K5는 단순명쾌했다. 힘, 크기 등에서 숫자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경쟁모델에서 찾기 힘든 기능들도 적지않다. 화려하게 등장한 K5는 명실상부한 기아자동차의 대표차종으로 기아차의 전성기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K5가 쏘나타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 대목이 가장 큰 관심사다. K5를 타고 비 내리는 강원도를 달렸다.

K5를 탔다. 비 내리는 강원도 양양에서다. 양양에서 고성까지 왕복 130여 km를 K5를 타고 달렸다. 시승차는 K5의 최고급 모델인 2.4 GDI 다.

기아차의 디자인은 이제 익을 대로 익었다. 완숙의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기아차의 디자인이 K5를 빚어냈다. 멋있다. 쿠페를 흉내 내며 손대면 베일 것 같은 쏘나타의 디자인보다 K5의 디자인이 한 수 위로 보인다. K5와 쏘나타의 디자인 형태를 겹쳐보면 거의 비슷하게 겹친다. 거의 같은 틀 안에서 이처럼 다른 디자인이 나왔다는 게 놀랍다.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특히 뒤에서 보면 중형 세단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작아 보인다. 실제보다 커 보이려는 차들이 많은데 그 틈새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K5도 쿠페 닮은 세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좋다. 최근 나온 세단들은 하나같이 ‘쿠페 닮은’ 디자인을 강조한다. 오히려 식상하다. 왜 그렇게 쿠페에 집착할까.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마이너리티들의 따라 하기에 다름이 아니다. 남들 다 하는 쿠페 닮은 디자인 말고 어느 누구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디자인을 이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결국은 이 대목을 넘어야 기아차의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완성된다. K5의 디자인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훌륭하다. 하지만 글로벌 넘버원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는 얘기다. 5등쯤 하는 학생에게 1등을 노리라는 격려다.

운전석을 둘러싼 공간은 최고다. 특히 센터페시아는 흠잡을 데 없다. 운전석 방향으로 살짝 틀어놓은 센터페시아는 운전을 위한 공간을 제대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무광재질을 사용해 질감이 좋을 뿐 아니라 손때 묻을 걱정도 크지 않다. 센터페시아는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K5는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 핸들에 붙은 음성인식 버튼을 누르고 “라디오”하고 외치면 라디오가 켜진다. “내비게이션”하고 말하면 또 그대로 이뤄진다. 발음을 잘 알아듣는다. 운전하다가 버튼을 찾아 눈길을 이리저리 주지 않아도 간단히 음성명령으로 차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재미있고 기능적이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하다. 교차로와 차로 표시가 정확하다. 초행길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면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그래픽 수준은 조금 떨어진다. 완벽한 2D 그래픽이다. 3D 시대에 새로 나오는 차의 모니터는 눈에 확 와 닿는 그래픽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비게이션을 만든 현대모비스가 분발해야 할 대목이다.

JBL 오디오 시스템은 풍부한 질감을 가진 소리를 낸다. USB 메모리는 물론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이용해서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최고출력 530W에 8개의 스피커가 입체감 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온열 스티어링휠은 열선 대신 도료방식을 택해 고르게 따뜻해진다. 손에 닿는 느낌이 훨씬 좋다는 설명이다. 시트는 바이오케어 온열시트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원적외선 방출 기능이 있다고 한다. 건강까지 배려하는 기술이다.

스티어링 휠은 정확히 3회전 한다. 조향비가 좀 더 타이트해도 좋겠다. 바퀴가 틀어진 상태에서 시동을 걸면 바퀴를 정렬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다른 어떤 차에도 없던 메시지다. 기아차가 사내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채택한 아이템이라고 한다. 좁은 주차장에서 틀어진 바퀴를 모르고 가속페달 밟다가 접촉사고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K5라면 그럴 일은 없겠다.

쏘나타에 적용했던 패들 시프트가 K5에서는 생략됐다. 쏘나타 2.4 GDI 모델에 적용했다가 신차발표장에서 레버가 부러지며 화제가 됐던바로 그 패들시프트다. 아마도 그 일로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가죽까지 덧댄 대시보드에 비해 도어패널의 재질은 조금 격이 떨어진다. 조금 더 고급스러우면 차의 느낌이 훨씬 좋겠다.

쿠페 스타일을 좇다보니 뒤창은 많이 기울어 좁아 보인다. 사이드미러를 통한 시야는 충분했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거는 건 멋있는 동작이다. 동그란 단추에 손가락을 우아하게 갖다 대고 꾹 누르면 잠자던 엔진이 부르르 떤다. 쇳덩어리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그니션 키를 딸깍 돌려 시동을 거는 것도 멋있는 동작이지만 2010년에는 버튼을 누르는 게 훨씬 더 어울린다.

공회전 상태에서 rpm은 600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매우 안정적이다. 시동이 켜졌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소음이 실내로 파고 든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 전후로 안정적이다. GDI엔진의 파워는 201마력이다. 자동6단 변속기가 올라간 2.4GDI모델의 공차중량은 1,470kg. 마력당 무게비가 약 7.3kg수준으로 매우 우수하다. 스포츠세단의 면모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동 변속모드로하면 시속 60km에서 2단, 100km/h에서 3단, 그리고 140km/h에서 4단으로 각각 시프트업이 일어난다. D모드를 이용하면 변속 쇼크가 부드럽게 느껴진다. 수동모드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더 거칠다. 6단 자동변속기는 변속기 오일교환이 필요 없다.

가속력은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GDI 방식의 엔진이 도입되면서 힘이 훨씬 강해졌다. 동급 차종 대비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심지어 상급모델인 K7 2.4(180마력)보다 강하고 K7 2.7(200마력) 모델과 비교해도 약간 우월하다. 바로 GDI 엔진의 우월성이다. 기아차 관계자에 따르면 K7에도 GDI 엔진이 곧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2.7 엔진 대신 3.0 엔진이 적용될 것이란 설명이다.

강한 힘은 일반도로에서 주체 못할 만큼 넘친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탄력 있는 반응이 리얼타임으로 느껴진다. 고속에서도 가속력은 살아있다. 막무가내로 힘만 쓰는 게 아니다. 액티브 에코 시스템이 있어서 이를 작동시키면 최적의 연비를 확보해준다.

급가속을 해도 휠스핀은 일어나지 않는다. VDC가 휠의 구동력을 잘 컨트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스펜션은 조금 튀는 느낌이다.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딱딱해서 나쁘지 않지만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뱉어내는 것 같은 느낌은 아쉽다. 고속주행에서 차체안정성이 돋보인다. 시속 180km을 넘기는 구간에서도 차체는 안정감 있다. 고속에서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도 크지 않다.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겠다는 신뢰감이 드는 것은 차체의 각 부분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워 스티어링은 엔진과 유압이 아닌 별도의 모터 힘으로 작동한다. 이는 또한 VDC와 연동한다. 차의 거동이 불안정할 때 브레이크, 엔진 구동력 등과 함께 파워 스티어링까지 함께 조절하는 것이다. 전자제어 능력이 점점 진화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K5는 상품성이 매우 뛰어나다. HID 헤드램프, 스마트 코너링 램프, 차세대 VSD시스템인 VSM, 타이어 공기압 경보, 급제동 경보시스템, 통풍시트, 온열시트, 운전석 동승석, 사이드, 커튼 에어백 등 안전과 편의장치들이 경쟁 모델들보다 월등하다.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K5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이다.

판매가격은 20모델이 1,975만원-2,725만원, 2.4GDI 2,825만원~2,965만원, 2.0 LPI가 1420만원~2035만원이다. 2.4 GDI 모델은 제원표상의 출력이나 상품성 면에서 중형 수입 세단들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대단한 도약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계급장 떼고 붙으면 이긴다고 해도 국산차 소비자와 수입차 소비자는 확연히 구분된다. 물론 그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국산차와 수입차를 동등하게 견줘보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고등학생이 대학생 수준의 문제를 척척 풀어내도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일 뿐 대학생 대접을 안 해주는 것이다. K5가 그런 형국이다.

또 한가지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쏘나타다. K5는 쏘나타를 넘어설 수 있을까. 기아차가 K5를 소개할 때경쟁차종, 비교대상 차종에 쏘나타는 없었다. SM5나 캠리, 알티마와 비교할 뿐 쏘나타와의 비교는 애써 피했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K5를 살 사람이라면 캠리나 알티마와 비교하기보다는 SM5나 쏘나타와 견줘보는 게 당연하다. K5가 쏘나타를 이긴다면 ‘기아차의 전성기’는 비로소 시작되는 것으로 공인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를 넘어서는 기아차의 유쾌한 반란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K7이 나왔을 때 이름이 뜬금없다는 지적을 했었다. 이제 K5가 나온 만큼 뜬금없는 이름이라는 지적을 철회한다. 이제는 K시리즈로 연속성을 가진 기아차의 작명법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대형세단은 K9으로, 준중형은 K3로 생각하고 있다는 기아차 관계자의 설명도 들었다. 다만 프라이드는 브랜드 파워가 강해서 K1이라는 이름을 쓸까말까 고민중이라는 설명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시끄럽다. 의외다. 고속에서뿐 아니라 80km 전후의 중고속에서도 시끄러운 소리가 실내로 유입된다. 중저속 구간에서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잡소리가, 고속에서는 속도 이상으로 바람소리가 크게 들린다. 스포티한 성능을 강조하려는 다이내믹한 사운드라고 보기엔 어색하다. 일부러 만든 소리가 아니라, 발생하는 소리를 제대로 덮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방음대책은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듯 하다. 성능에 대한 평가가 디자인과 상품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소음 때문이다.변속레버는 너무 왼쪽으로 배치됐다. 수동모드로 변속하려면 오른 손을 왼쪽으로 바짝 당겨서 조작해야 한다. 몸의 자세가 자연히 움츠러들게 돼 불편했다. 덩치가 큰 사람은 불편함이 더 크겠다. 엔진과 변속기의 레이아웃을 흔들지 않는다면 변속레버를 조금 더 오른쪽으로 배치하는 게 맞겠다.
글 /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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