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J는 재규어의 플래그십이자 얼굴이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잡은 재규어의 이미지는 XJ에서 왔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좌우 두 개씩 네 개의 동그란 헤드램프, 그 가운데 자리한 재규어 앰블렘은 재규어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디자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새로 선보인 8세대 재규어 XJ는 기존 XJ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에는 성공했고, 기존 모델과의 디자인의 일관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늘씬하고 날렵한 XJ의 모습은 이제 옛 모습으로 남았다. 재규어의 상징과도 같은 좌우 두 개씩 네 개의 둥근 헤드램프도 이제는 XJ에서 사라졌다. 뉴 XJ의 헤드램프는 쿠페 라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헤드램프의 형상 자체가 쿠페의 보디라인을 닮았다. 동그라미가 가고 쿠페가 온 셈이다. 매시 타입의 그릴이 재규어 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보닛에 당당하게 자리한 재규어 앰블렘은 사라지고 없다. 보행자 안전을 강화하는 추세에 재규어 앰블렘의 설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3D로 보닛에 자리했던 앰블렘은 2D로 변해 뒷부분 트렁크 도어로 이사했다.

옆모습은 간결하다. 면의 굴곡도, 선의 교차도 거의 없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면도 있다. 기존 XJ를 좋아했던 이들은 ‘이것은 XJ가 아니다’라고 외칠지 모른다. 낮은 차체에 보닛과 트렁크 라인을 길게 뽑아 마치 연미복을 차려입은 영국 신사를 닮았던 XJ가 간 곳이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루프에서 트렁크 리드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내린 ‘쿠페 닮은’ 라인이 마주한다. 보디 면적도 넓어졌다. 5미터를 훨씬 넘는 길이지만 시각적으로는 그리 길어보이지 않는다. 재규어 XJ까지 굳이 쿠페 스타일에 목을 메야하는지 모르겠다. 재규어 특유의 고급스러움, 고고함, 그 만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찾기가 힘들다.

C필러는 검정색이다. 보디컬러와 다르다.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뒷모습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리어 램프다. 재규어 XJ가 지나간 흔적을 연상케하는 라인으로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를 만들었다. 원근법을 적용해 빨간색으로 구성한 램프가 그럴듯하다.

인테리어는 화려하다. 호화 요트의 럭셔리한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인테리어다. 도어에서부터 차의 대쉬보드 상단까지 최상급 무늬목으로 마감했다. 여기에 최고급 가죽을 사용해 고급 주택의 서재에 들어와 앉은 듯한 느낌을 준다.

8인치 모니터는 터치스크린으로 작동하는 데 듀얼 뷰 방식이다. 운전자와 동승객이 같은 모니터에서 다른 화면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맵을, 동승자는 오디오나 비디오 화면을 볼 수 있다.

계기판은 버추얼 인스트루먼트 디스플레이다. 즉 실제로 계기판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은 스크린이다. 스크린에 계기판이 실제처럼 투사되고 여기에 정보들이 표시돼는 것이다. 시동을 끄면 계기판도 사라진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는 운전자의 기분이 사이버틱하겠다. 지금까지의 드라이빙이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다.

센터 페시아와 센터터널은 하이그로시로 만들었다. 번쩍거림이 호화롭지만 마른 걸레로 자주 닦아줘야 하겠다. 사람들의 손자국이 쉽게 남아서다.

재규어 XJ에는 카오디오로는 최고수준이라할 수 있는 1200w의 출력을 자랑하는 오디오가 있다. 보워스 앤 윌킨스 사운드 시스템은 2개의 우퍼 스피커를 합해 모두 20개의 스피커를 가졌다.

그동안 많은 자동차들이 재규어 XJ의 디자인을 카피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현대차 EF 쏘나타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재규어는 더 이상 다른 차들이 XJ의 디자인을 카피해갈까봐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다.

XJ의 헤드램프를 보면 솔직히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에 데뷔했던 XJ는 원형 램프 대신 사각 램프를 도입했다가 큰 실패를 겪었었다. XJ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져버린 디자인을 사람들이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디자이너는 늘 이전 디자인을 부정하는 늪에 빠진다. 이전 디자인을 해체하고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노무현을 부정하는 이명박의 강박과 어쩌면 비슷할지 모른다. 이런 강박은 늘 오류를 범하게 마련이다. 이전의 것들이 모두 악이거나 혹은 모두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재규어 올 뉴 XJ’를 바라보며 묻는다. XJ의 아이덴티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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