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난 뒤는 상쾌하다. 오염된 공기가 정화되고 바다 속도 한바탕 뒤집어져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을 준다. 태풍이 고마운 존재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계에 태풍이 한창이다. 어느 정도 잦아드는 기미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토요타 사태는 아직도 일파만파로 번지는 중이다. 운전석 매트의 문제가 가속페달 문제로 확대되고 그동안 쉬쉬해오던 이런 저런 문제들이 차근차근 드러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토요타는 많은 소송에도 시달려야 할 전망이다.


토요타를 보며 지레 겁먹은 다른 메이커들도 문제가 있는 듯 하면 서둘러 리콜에 나선다. 여느때 같으면 시치미 떼고 배짱 부릴 업체들이 어지간하면 고분고분 나긋나긋 서둘러 리콜한다. 토요타 태풍이 불러온 리콜의 홍수다.


잘 된 일이다. 숨긴 일이 드러나고, 잘못이 고쳐지고, 소비자의 안전이 조금은 더 보장되는 효과를 냈다. 토요타 태풍의 긍정적 효과다.


하지만 단 한발자국도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급출발, 혹은 급발진의 문제다. 비단 토요타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래전 부터 여러 메이커가 시달려왔던 문제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메이커는 없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최근의 토요타 사태로 인해 문제가다시 불거졌을뿐이다.
급출발은 유령과도 같다. 현상은 있는데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대체로 자동차 메이커에서는 급출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운전자의 조작 실수로 몰고가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서는 데 왜 달려나가는지, 짧은 거리에서 운전자의 조작과 상관없이 어떻게 차가 자기 마음대로 힘차게 움직이는지. 지금까지의 기술과 논리로는 도대체 설명이 안된다.
그렇다고 급출발이 없는 건가. 그렇지 않다.차가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급격히 속도를 올리며 달려나가는 급출발은 분명히 존재한다.브레이크등이 들어왔는데도 차가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움직이고, 수십년 경력의 운전자가 차가 급하게 움직이는데에도 제어를 하지 못해 짧은 거리를 무서운 속도로 달려 벽에 부딪히는 일들은 분명히 급출발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이번 토요타 사태의 출발을 알린 미국 911 대원의 급출발 사고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면 누구도 급출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분명히 급출발은 존재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부터 사태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부정해서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문제는그 누구도 명쾌하게 급출발을 설명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됐을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이를 막으려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분명하고 명쾌하게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난다긴다하는 연구소, 기관, 단체, 학자들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전자파, 전자장치의 결함, 설계 결함, ECU 등 전자장치 프로그램의 결함 등등 “때문일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번 리콜로 급발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짐 렌츠 미국 토요타 자동차판매 사장의 미국 하원 청문회 발언은 솔직했다고 본다. 급발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완벽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추정해 근거해서는 막연한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급출발은 또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급출발의 원인을 규명하는 게 먼저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 급출발에서 자유로운 메이커는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산 최고급 럭셔리 메이커들도, 야무지다는 일본차들도, 급부상하는 한국차도, 대중차의 본산 미국차도 급출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업계가 공동출자해서 급출발만을 규명하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존재하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유령과도 같은 급출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온갖 첨단 기술은 급출발의 또 다른 원인일 수 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급출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첨단기술을 자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는 급출발을 해결해야 할 때다. 급출발이라는 유령을 이제는 쫓아내야 한다.


상상을 해본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이 사회에 환원을 약속한 자금 일부를 재원 삼아 자동차 급출발 연구소를 세우고, 수년 내 성과가 나온다면. 아마도 한국차는 확실한 비교우위에 서서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토요타가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나설지 모른다. 당장은 힘든 문제겠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난 뒤상쾌함이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급출발의 원인규명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선다면그것이 바로토요타 태풍이 주는 상쾌함이 아닐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