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토요타 리콜 사태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토요타 사태 이후 자동차 산업은 그 틀에서부터 급격한 변화를 맞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바닥 매트 때문에 가속페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리콜을 한다고 하니 곧 잠잠해지겠지 하는 생각이 이어졌지요.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매트의 문제가 가속페달 문제로 옮기더니 이제는 프리우스의 브레이크로 확대됐습니다. 혼다와 포드 푸조도 리콜 대열에 동참하고 있지요. 또 어떤 메이커가 추가로 리콜에 나설지 관심입니다. 바짝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지는 듯 합니다.
정말 문제는 CTS사가 만들었다는 가속페달에 있는 건지, 아니면 전자장치 혹은 전자장치의 소프트웨어에 있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미국 하원에서 진행중인 청문회가 제대로 원인을 밝혀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 공세를 끝나고 말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토요타 사태로 현대기아차가 정말 반사이익을 보는 건지, 그 반사 이익이 계속 이어질지, 이러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서는 건 아닌지. 혹은 현대기아차까지 리콜 대열에 합류하는 건 아닌지. 갖가지 생각이 듭니다.
토요타는 진짜로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속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
음모론에도 귀가 솔깃합니다. 미국 사회와 정부가 의도적으로 토요타 죽이기에 나섰다는 주장이지요. 지엠의 몰락 이후 1위 메이커로 우뚝선 토요타를 미국 사람들이 좋아했겠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미국의 교통부 장관 등이 나서서 토요타차 오너들은 즉각 운행을 멈춰야 한다는 등 토요타 때리기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패닉’ 상태로 치닫는 것 같아 불안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러다가 토요타가 무너지는 건 아닌지. 정상을 향해 치닫던 ‘품질의 토요타’가 마른 수건 다시 짜다 수건을 찢어먹은 건지. 지금까지 자동차 산업의 정석으로 불리던 토요타식 생산방식이 문제의 원인인지. 국내에서 팔리는 토요타는 정말 괜찮은 건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토요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작금의 일들이 너무나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한 건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토요타의 역사는 물론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도 이번 토요타 사태는 중요한 분수령을 이룰 것입니다.
1위 업체에 대한 막연한 신뢰는 줄어들겠지요. 생산 판매를 많이 하는 회사는 자칫 리콜 사태에 처했을 때 고쳐줘야할 차들도 엄청나게 많다는 말입니다. 1위라는 사실 자체가 큰 위험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차를 적게 팔 수도 없는 일. 자동차 메이커들의 딜레마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자동차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커질 것입니다. 엔진과 변속기, 흡배기장치, 동력전달장치 등에 각종 첨단 전자기술이 적용된 복잡한 자동차는 언제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일지 알 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기계적으로 복잡하고 전자적으로 첨단화되다보니 정확하게 어디가 문제인지 그것을 만든 사람들 조차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급출발이라는 현상은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재현하는 자동차 메이커나 연구단체, 기술자들이 없는게 이를 말해 줍니다. 갖가지 장치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내연기관 자동차는 마치 불치병에 걸린 환자처럼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토요타의 문제는 결국 모든 자동차 메이커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자동차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자동차가 각광받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팟, 아이폰 처럼 소비자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제품,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자동차가 나온다면 많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전기차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전기차는 간단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엔진, 변속기, 연료공급장치, 흡배기장치 등이 필요 없습니다. 껍데기에 배터리, 모터, 타이어만 있으면 됩니다. 복잡할 게 없지요. 고장날 확률도 크게 줄어듭니다. 대량생산되고 배터리의 기술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가격도 크게 낮아질 것입니다.
시속 110km가 법이 정하는 최고속도인데 전기차는 이미 이 속도를 충분히 낼만큼 성능도 갖췄습니다. 일본에서 이미 아이미브, 리프 등 일반 시판용 전기차를 만들어 내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전기차가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됩니다. CT&T 같은 전기차 메이커가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결국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불러옵니다. 단순히 전기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어서 이지요. 당장 자동차 메이커들이 엄청나게 다양화 됩니다. CT&T, 잽, 레오 모터스, 에이디모터스 등 생소한 이름들이 전기차 메이커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같은 덩치큰 기업체가 전기차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섬성전자가 전기차를 만들지 말란 법도 없지요.
전기차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습니다. 가격과 안전성의 문제 때문이지요. 아직 낯선 존재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큽니다. 친환경차에 대한 호감, 기존 자동차들의 대규모 리콜 사태 등으로 인한 불안과 반감 등이 어루러지고 안전과 가격에 대해 소비자들이 받아들일만한 수준이 되면 전기차 수요는 급격히 늘어날 것입니다.
엔진 변속기를 만들던 부품회사들은 지금처럼 호황을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주유소 매출도 줄어들테고 기계과보다 전기과가 훨씬 높은 경쟁률을 보일 것입니다. 현대차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토요타나 닛산이 아니라 한국전력이나 원자력 회사 같은 곳이 될 것입니다. 전기차의 보급에 맞춰 수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는 변화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말 그대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이지요.
몇 년 후에 다시 요즘을 되돌아 본다면 아마도 토요타의 리콜 사태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요타만의 문제가 전통적 자동차 산업 모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토요타 리콜 사태를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