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차가 드디어 3세대 SM5를 내놨다. 오는 18일 정식발표를 앞두고 7일, 제주도에서 새차의 모든 것을 다 밝히고 시승 기회까지 제공했다. 현대차 뉴쏘나타에 이어 르노삼성차도 신형모델로 교체해 중형차 시장에서 한판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1998년은 삼성그룹이 ‘신수종사업’으로 추진해온 자동차사업이 본격 시작된 해다. SM5의 출현은 국내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놓은 첫 모델이어서다. 삼성은 심혈을 기울여 차를 만들었고,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닛산의 모델이었지만 삼성의 손길이 닿으면서 품질 수준을 크게 올려 국산차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르노에 매각하고 손을 뗐지만 SM5는 2005년 2세대 모델을 거쳐 올해 벽두에 다시 3세대 모델을 내놓으며 화려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프리미엄 패밀리 세단’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3세대 SM5를 제주도에서 탔다. 서울은 영하 17도를 기록하는 날, 제주도는 영상 3도였다.
SM5를 보면서 자꾸 쏘나타를 떠올리는 건 필연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고객들에게 어필해야하는 두 차는 필연적으로 라이벌이다. 엉덩이 살랑거리며 진한 화장을 하고 날렵한 자태를 자랑하는 쏘나타라면 SM5는 보수적 집안의 얌전한 규수마냥, 수수한 차림에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겨우 맨얼굴을 기초화장 정도로 매만진 모습이다.쏘나타는 화려하지만 어지럽고 SM5는 무난하지만 강단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무난함은 과거 쏘나타의 미덕이었다. 이제는SM5가 그 미덕을 갖추고 있음이 재미있다.디자인만을 놓고 본다면 쏘나타는 연애 상대로 좋겠고, SM5는 결혼 상대다.소비자들이 컬러풀하고 화려한 차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차를 고를 때에는 무채색의 무난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SM5와 쏘나타는 좋은 대비를 이룬다. SM5는 부드럽다. 차의 앞뒤로 한복의 소매깃같은 둥그런 선이 자리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디자인이다. 과장된 선을 동원해 화려함을 뽐내는 모습이 아니다. 단아하고 절제된 모습, 하지만 분명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디자인이다. 뒤에서 정면으로 이 차를 보면 리어램프가 렉서스 IS 250을 닮았다. NF 쏘나타의 그것과도 닮았다. 그런 시비를 피하려는 듯 옆면을 타고 흐르는 날개를 더해 이 차만의 모습을 확보했다. 부드러운 라운드형상의 선, 엣지있는 트렁크 라인의 끝선, 강하게 버티는 C 필러와 윈도 프레임 등이 이 차의 외형적 특징을 이룬다.
인테리어는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다. 센터페시아를 무광 재질로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마음에 든다. 광택이 번쩍이는 재질은 화려할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값싸보이고 지문, 스크레치 등에 약해 관리하기가 힘들다. SM5 처럼 무광 재질을 쓰면 화려한 맛은 떨어지지만 은은한 맛이 있고 지문이나 스크레치에 강해 관리하기가 쉽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퍼퓸디퓨저는 국산차에선 처음 도입되는 부분이다. 두 종류의 향수를 담아 놨다가 필요할 때 향을 뿌리는 것. 푸조의 일부 차종에서 만났던 아이템이다. 실내 공기를 정화해주는 ‘삼성플라즈마 이오나이저’도 있다. 웰빙 개념이 도입된 인테리어 아이템들이다.
핸들은 깨끗하다. 오디오 조절 버튼은 핸들 우측 아랫부분에 숨겨놓듯이 배치했고 핸들 위에는 아무런 버튼이 없다. 깔금하게 오로지 조향에만 충실하면 되는 그런 핸들이다. 선루프는 넓게 지붕을 덮고 있다. 시원한 창 밖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다. 선루프 스위치는 로터리식이어서 조작하기도 쉽고 편하다. 앞바퀴 굴림이라 뒷좌석 센터 터널도 높지 않다. 승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우선은 2.0 가솔린 엔진, 한 종류가 올라간다. 이후 디젤엔진을 비롯해 엔진 종류를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르노삼성측은 말했다. 141마력에 19.8kgm의 토크를 가졌고 연비는 12.1km/l, 닛산의 엑스트로닉 무단변속기를 달았다.
SM5는 조용했다. 시속 120km 미만의 일상주행 영역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없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차는 움직인다. 차의 움직임이 차분하고 소프트한 편으로 승차감이 돋보인다.
엔진 회전수는 조금 높아 보인다. 아이들 rpm이 800, 시속 100km, D레인지에서 rpm이 2200을 상회한다. 2.0 엔진을 얹은 차들은 일반적으로 2,000rpm을 나타내는 것과 비교할 때 엔진 회전수가 조금 높다. 시속 100km를 유지하며 수동 변속을 하면 3단에서 5,000rpm, 4단에서 4,000rpm 5단에서 3,000rpm, 6단에서 2,200rpm을 마크한다.
시속 60km까지 1단이 밀고 나간다. 2단은 80km, 3단은 110km까지다. 4단의 한계 속도는 도로 사정상 체크할 수 없었다. 변속감은 없다.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시속 140km 이상까지 속도를 높이는데 변속 충격이 없다. 그냥 꾸준히 속도를 높여나간다. 무단 변속기의 장점이다.
무단변속기의 이런 부드러운 가속감은 양면성이 있다. 펀투 드라이브, 즉 운전하는 재미가 없다며 유럽 사람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반면, 일본에서는 쇼크가 적고 효율이 높아서 좋아하기도 한다. 부드럽게 가속하면서도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확실하게 반응해 믿음직스럽다. 수동변속기는 적용되지 않는다. MT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매우 아쉽다. 하지만 안팔리는 옵션을 굳이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엔진 힘은 저스트 파워다. 넘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힘을 낸다. 고속에서 가속감은 아쉽다. 속도를 높이려면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속 200km를 밟기가 어렵다. 고속주행을 욕심내는 차는 아니다. 르노삼성이 말했든 ‘패밀리 세단’에 맞춘 성능 세팅으로 이해하고 싶다.
승차감은 탁월했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편으로 차와 노면을 잘 조화시켜준다. 약간 소프트한 서스펜션으로 부드럽게 달리면서도 잔진동과 노면 충격은 잘 걸러줬다. 과속방지턱을 조금 거칠게 지나도 충격이 오래 남지 않는다. 편안한 승차감은 조금 부족한 듯한 동력성능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스티어링휠은 약 2.8 회전한다. 3회전이 조금 넘는 다른 차들에 비해 조향비가 좁은 편이다. 운전을 하는 데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뉴트럴에 가까운 조향성능. 예리한 코너에서도 흔들림 없이 차를 콘트롤 할 수 있었다.
르노삼성은 이 차를 만들며 안전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다. 사고 때 보행자가 덜 다치게 하려고 알루미늄 후드를 사용했다.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을 적용했고 B 필러의 강성을 크게 높였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전후방 주차 경보 센서도 예방안전 차원에서 유용한 장치들이다.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작동했다. 네거리에서 갑자기 지나는 차 때문에 급제동을 했는데 생각보다 차가 부드럽고 여유있게 멈췄다.
운전석에는 마사지 기능이 있다. 장거리 운전하거나 몸이 피곤할 때에는 시트에 몸을 맞겨 마사지를 받으며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에어컨은 운전석, 조수석, 뒷좌석 3개 구역으로 나눠 조절할 수 있다.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소리로도 느낄 수 있다. 10개의 스피커가 적용된 보스 오디오 시스템은 귀에 착착 감기는 높은 음질을 제공한다. 눈을 감고 입체감이 살아있는 오디오 소리를 듣는 느낌이 색다르다.
판매가격은 2080만원부터 2650만원까지다. LE 트림이 2530만원으로 4.1% 가격이 올랐고 PE는 1.4% 인상에 불과하다. 경쟁모델인 쏘나타에 비하면 착한 가격이다. 착한 가격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르노삼성은 이 대목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가격을 낮추멶서도 지금까지 르노삼성이 지켜왔던 ‘고가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어떻게 이어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품질 수준이 관건이다. 이를유지하지 못하면 프리미엄 이미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행히 르노삼성의 품질에 대한소비자 만족도가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착한 사람들이 있다. 경쟁보다는양보가 체질화된, 그래서 살다가 손해보는 일이 많지만 굳이 불평을 하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들. 우리 사회는 아마도 그런 착한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정도라도 유지되는 게 아닌가 싶다. SM5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이 차도 너무 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도대체 경쟁 모델과 경쟁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제원표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능의 주요 지표들이 경쟁모델에 앞서는 부분을 찾기 힘들다. 경쟁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드는 느낌이 ‘착한 차’다.
“기본에 충실했다”는게 르노삼성차의 설명이다. 굳이 성능을 억지로 늘리지 않고 승차감, 소음 등 차의 기본을 제대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직관적 효과를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었다. 르노삼성의 한 중역은 현대차 쏘나타를 두고 “경쟁모델이라기보다 동반자”라고 말했다. 변명이나 혹은 의례적인 립서비스라고 보기엔 참 진지하게 한 말이어서 듣는 입장에서 곤혹스러웠다. 르노삼성차에게 필요한 건 투지와 야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선루프 커버가 선루프와 연동되지 않는다. 손을 뻗어 커버를 열어야 하는데 이 마저도 쉽고 부드럽게 열리지 않는다. 위로 누르고 살짝 앞으로 당기면서 뒤로 밀어야 하는 데 손 동작이 복잡해지고 잘 열리지 않아 몇차례 힘을 써야 했다. 그냥 버튼을 눌러 선루프가 열릴 때 커버도 따라서 열리게 연동시키는 게 좋겠다. 고속주행에서 조금 더 힘있게 차를 끌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엔진 출력을 조금 더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