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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사냥 나선 토러스

토러스가 왔다. 포드 코리아가 10월에 출시한 이 차는 국산 대형세단과의 본격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산 대형세단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늦은 가을, 포드코리아가 마련한 시승회에 참가해 포드 토러스를 타고 경기도 양평까지 시승을 즐겼다.

크다. 길이가 5미터를 넘는다. 너비는 2미터 가까이 된다. 대형세단 중에서도 큰 스펙이다. 큰 차 좋아하는 한국 시장에 호소력이 있겠다. 한국 사람들의 큰 차 사랑이 유난하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크지만 커 보이지 않는다. 차의 각 부분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우러져 크다는 느낌보다 당당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헤드램프를 슬림하게 배치한 것도 큰 차체를 마주하는 거부감을 상당부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전체적으로 중후한 남성의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옆모습과 뒷모습은 단정 그 자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 오랜 연륜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정돈된 모습이다. 신형 쏘나타의 앞모습에서 처럼 의욕만 앞서서 화려하게 치장한, 그래서 진한 화장을 한 듯한 차를 보는 거북스러움이 이 차에는 없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다. 잠깐 연애하기에는 화려한 상대가 좋겠지만 오래 함께 하기에는 잔잔하고 정갈한 상대가 낫다. 토러스는 마당에 차를 세우고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잔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차다.

이른바 ‘젠’ 스타일을 적용했다는 인테리어도 익스테리어 디자인만큼 편안하다. 젠은 禪을 일본어로 읽은 발음. ‘선’이라는 개념을 앞세웠다는 것은 동양, 명상, 편안함 등의 이미지를 추구했음을 암시한다. 젠 스타일의 핵심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38도 기울어진 센터페시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완만하게 기울어진 센터페시아는 무릎 위에서 센터 콘솔과 만나며 뒤로 넘어간다. 이를 기준으로 좌우가 완벽하게 구분된다.

뒷좌석은 센터터널이 거의 없는 편이다. 좌우 구분없이 트여 있다. 공간 활용성이 그만큼 좋다. 고급 세단이지만 앞바퀴 굴림 방식이어서 뒷좌석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 인테리어의 질감은 좋은 편이나 그렇다고 최상급은 아니다. 가죽과 플라스틱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트렁크룸은 넓었다. 칭찬하고 싶은 것은 넓은 트렁크가 아니다. 트렁크 안쪽 윗부분이 말끔하게 덮여져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 부분은 대부분의 경우 철판과 스피커가 그대로 드러난 채로 출고된다. 아마도 방음을 위해 이랬겠지만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마무리를 제대로 한 모습을 보면 차에 대한 신뢰가 더해진다.

운전석 도어 바깥에는 암호를 입력하는 숫자판이 있다. 키리스 엔트리 키패드로 포드에만 있는 특징이다. 여기에는 아이팟 햅틱 기술이 적용됐다. 키를 차 안에 두고 문을 잠궜어도 비밀번호를 누르면 문을 열 수 있다. 포드 차에 익숙한 사람들은 키를 차 안에 두고 내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번호를 눌러 문을 열면 되니까. 포드 오너가 다른 차를 운전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키를 넣고 문을 잠궈버리면 낭패니까.

시동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토러스의 키는 고전적이다. 버튼식이 아니라고 나무랄 생각은 없다. 버튼을 누르나 키를 돌려 시동을 거나 크게 다를 건 없다.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굳이 버튼식 시동장치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 알피엠은 600 전후로 매우 안정적이고 조용하다. 공회전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최대 4000rpm을 넘지 않는다.

속도를 시속 100km에 맞추면 rpm은 1800 수준에서 안정된다. 조용한 편이다. 최고출력 267마력의 힘은 6,250rpm에서 터진다. 최대토크는 4500rpm에서 34.4kgm. 마력당 무게비 7.1kg 수준으로 가볍다.

조금 큰 스티어링 휠은 손에 잡히는 촉감이 좋다. 핸들은 크지만 가볍다. 살짝 핸들을 잡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핸들을 돌리느라 따로 힘 쓸 필요 없겠다. 남성들은 크게 신경쓰이지 않지만 여성이라면 핸들의 가벼움이 고마울 때가 있다. 핸들은 3.1회전 한 뒤 완전히 감긴다.

핸들에는 패들 시프트가 있다. 변속레버를 M으로 하고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변속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변속레버로도 수동 변속을 허용하는 다른 차들과 달리 토러스는 패들시프트로만 수동변속을 할 수 있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수동변속을 했다. 1단에서 시속 60km, 2단에서 시속 100km에 다다랐지만 자동변속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스스로 알아서 시프트업하는 법이 없다.

적극적인 운전을 즐기는 운전자라면 이런 부분을 마음에 들어한다. 높은 rpm을 쓰면서 강하게 차를 다루고 싶을 때, 수동모드에서조차 변속기가 자동변속을 해버리면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 끝까지 높은 rpm을 유지하며 강한 힘을 느끼고 싶은데 어느 순간 힘이 턱하고 풀려버리는 느낌이 오면 맥이 빠져 버린다.

하지만 토러스는 그런 걱정 안해도 된다. 적어도 변속에 관한한 차는 절대 주인에 복종한다. 차가 아닌 운전자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수준에서 필요한 만큼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토러스는 몰라보게 조용해졌다. 포드가 렉서스 이상의 정숙함을 이루기 위해 작심하고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방음재와 차음재를 활용해 풍절음의 실내 유입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효과는 크다. 시속 120~140km 전후의 고속주행 구간에서도 차가 조용함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포장 잘 된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조용했다. 워낙 조용해서 시멘트 도로나 거친 도로를 달릴 때에는 실내로 파고드는 노면 잡소리가 도드라지게 들린다.

토러스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적용됐다. 레이더를 이용해 차간 거리를 조절하고 안전을 돕는 기술이다. 레이더가 약 180미터 앞까지 차의 운행상황을 모니터링 하면서 필요할 때 차의 속도를 줄여 차간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막혔던 전방이 다시 트이면 원래 정했던 속도로 스스로 가속한다.

앞차와 정해진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서 추돌 위험이 있으면 차 앞유리 아래쪽에 빨간 램프를 깜빡이며 경고 사인을 표시한다. 이때 브레이크는 미리 작동할 준비를 갖춰 살짝만 밟아도 큰 힘으로 제동하게 된다.

공차중량 1900kg으로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하게 가속을 하면 가속페달 작동과 차체의 반응 사이에 반박자 정도 시간차가 난다. 하지만 부드럽고 여유있게 운전하면 느끼기 힘들다. 대형 세단을 소형차처럼 마구 다루지 않는다면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안정맞춤인 차다. 속도를 높여갈 때 가끔 변속 쇼크도 느껴진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편이다. 한국 도로에는 조금 더 하드하게 세팅하는 게 맞겠지만 토러스는 미국차 다운 서스펜션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마치 고향 사투리를 숨기지 않는 사람같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승차감을 좋게하지만 급제동을 하거나 코너가 많은 산길같은 곳에서는 오히려 더 피곤할 수 있다.

가속을 하며 꽤 높은 속도로 오르막 언덕을 달리는데 고개 넘자 마자 과속방지 카메라가 떡 하고 나타났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강하게 터치하는데 차가 순간적으로 휘청했다. 소프트한 서스펜션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토러스에는 다른 차에서는 보기 힘든 재미있고 유용한 기술들이 많이 적용돼 있다.

마이 키 기능도 재미있다. 키를 여러개 만들어 각각의 키마다 제한 속도를 걸어둘 수 있는 기능이다. 부모가 젊은 자녀에게 차를 맡길 때 아주 유용한 기능이다. “빨리 달리지 마라” 잔소리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운전해라” 하고 시속 80km로 속도제한을 해 놓은 키를 전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 키로 시동을 걸어 운전을 하면 아무리 용을 써도 차는 정해진 속도 이상으로 달리기를 거부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 개발한 음성인식 커뮤니케이션 / 엔터테인먼트시스템인 싱크(SYNC) 엔터테인먼트 싱크 기능도 있다. 이를 통해 음성 명령 기능이 가능하다. 블루투스 핸드폰이 지원되고 MP3플레이어나 아이팟을 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USB 단자도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안마 기능이 있다. 아주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지만 장거리 운행시에는 피로를 더는 데 도움이 되겠다.

‘3-웨트 페인트 테크놀로지’도 포드만의 기술이다. 몇 차례에 걸쳐 페이트를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해야하는 도장공정에서 페인트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젖은 상태로 다음 도장을 입히는 기술이다. 이 때문에 작업공정이 줄어들고 스크래치에 강하다고 포드는 설명한다.

3800만원을 주면 토러스 SEL을 살 수 있다. 그랜저 330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급형인 리미티드는 4400만원으로 제네시스보다 저렴하다. 토러스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갖추고 가격은 국산차 수준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만 한 차다. 토러스가 국산차 수입차간 경계를 허무는데 앞장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토러스는 솔직하다. 디자인도 그렇고 성능에서도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시장 전략도 그렇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등 국산 대형 세단과 경쟁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은 토요타 캠리와 다르다. 캠리를 들여오면서도 현대차와의 경쟁은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토요타 브랜드 전체로 월 500대 정도만 판매 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토요타의 본심(일본말로 혼네라고 한다)은 뭘까 궁금해진다. 그런 면에서 포드의 태도는 토요타와 확실히 구별된다.

토러스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화려함을 좋아하고 남들 시선 의식해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과는 궁합이 안맞겠다. 무조건 국산차를 타야 한다는 이들에게도 이 차는 아니다. 합리적이고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들에겐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수동변속을 패들시프트로만 허용하는 것은 아쉽다. 변속레버를 통해서도 수동변속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형 선루프를 장착하느라 실내 지붕은 울룩불룩 볼륨감이 살아있다. 지붕 표면을 잘 정리정돈 했으면 싶다. 앞 차창과 만나는 지붕 끝선의 마무리도 거칠다. 좀 더 세심한 마무리를 하면 차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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