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 독일에서 였다. 정식 발표를 하기 전에 잠깐 타 볼 기회를 가졌다. 포르쉐의 본거지 슈투트가르트에서 약 30분 남짓 거리의 바이삭에서였다. 바로 포르쉐의 R&D 센터이자 포르쉐 모터스포츠의 아지트인 곳으로 파나메라가 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다시 한국에서 파나메라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파나메라는 포르쉐가 만든 4인승 세단이다. 포르쉐는 굳이 세단이니 쿠페니 정의하기보다 그냥 ‘파나메라’ 라고 소개하지만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고 이 차의 의미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장르 구분이 필요하다. 포르쉐가 만든 4번째 보디 스타일이다. 911, 카이엔, 박스터와 카이맨에 이어 4인승 세단으로 파나메라가 나왔다. 좀더 극적인 이름을 붙여 4인승 그란투리스모 라고도 한다. 바로 그 차를 한국에서 다시 탔다. 포르쉐 파나메라 S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S와 4S, 그리고 터보 세가지 모델 중에서 가장 기본 모델이다.

어떤 세단을 만들어 낼지 모두가 궁금했지만 포르쉐가 만든 것은 여전히 포르쉐였다. 많이 커진 포르쉐라 하면 좋겠다. 포르쉐의 라인이 구석구석 살아 있다. 볼륨감 있는 빵빵한 엉덩이는 포르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매력 포인트다. 파나메라의 엉덩이도 여지없이 포르쉐의 엉덩이 그대로다. 나를 미치게 하는…

첫 시승기에 키가 크고 볼륨감있는 늘씬한 팔등신 미녀를 닮은 자태라고 썼다. 여전하다. 보는 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게 하는 매력만점인 모습.

앞모습은 과장됨 없이 단정하다. 단정한데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아우라가 있다.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다.

포르쉐 특유의 성능에 편안함과 효율성을 더해 고객의 감성을 만족시킨다는 게 파나메라의 개발 목표다. 디자인, 인테리어, 소음, 엔진 등등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파나메라는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덩치는 컸다. 하지만 크다기보다 늘씬하다는 인상이 크다. 키가 크고 날씬한 서구형 미녀의 자태다. 5m에 조금 못미치는 길이(4,970mm)에 너비는 보통의 대형 세단보다 훨씬 넓은 1,931mm에 달한다. 높이는 1,418mm로 조금 낮은 편. 낮고 넓고 긴 자세가 나온다.

앞모습과 루프라인은 포르쉐의 DNA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포르쉐의 매력 포인트인 엉덩이, 즉 옆으로 삐져나온 리어휠 아치도 그대로다. 911을 늘려놓은 듯, 카이엔을 낮춰 놓은 듯 서로서로 닮은 모습임을 숨기지 않는다.

운전석에 앉으면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착각이 들만큼 많은 버튼들에 둘러 쌓인다. 특히 변속레버를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버튼들은 운전자를 주눅들게 만든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운전하기 힘든, 제맛을 느끼기 어려운 차다.

숄더라인은 높다. 운전석에 앉으면 어깨 위로 숄더라인이 지난다. 개방감은 덜한 대신 포근하고 안정된 느낌이 강해진다. 루프라인을 그리며 트렁크 라인과 이어지는 쿠페 스타일의 아름더움은 약간의 후방시야 장애를 댓가로 지불해야 한다.

루프 라인이 뒤로 아름답게 원형을 그리며 쿠페처럼 보인다. 이럴 경우 뒷좌석의 머리 윗공간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키가 큰 사람이라면 머리가 지붕에 닿는 일이 우려된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바닥과 지붕을 파서 머리 윗 공간을 충분하게 마련한 것이다.

쿠페 스타일의 세단. 많은 차들이 추세를 따르고 있다. 아우디 A5, 폭스바겐 CC, 심지어 신형 쏘나타에 이르기까지 쿠페 같은 세단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실내는 높은 센터터널이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좌우로 가르고 있다. 뒷좌석도 에누리 없이 둘이만 탈 수 있다. 그래서 4인승이다. 4개의 좌석에는 각각의 공간에 맞게 에어컨 및 히터 온도를 각자 다르게 정할 수 있다.

트렁크 공간에는 말그대로 트렁크 가방 4개가 들어갈 만큼 넓다. 뒷좌석을 접으면 더 넓어진다. 대형 럭셔리 세단이지만 기능적인면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엔진은 V8 4.8리터 엔진으로 400마력의 힘을 낸다. 어디가도 힘이 달린다는 얘기는 듣지 않을 정도다. 파나메라 S에 PDK를 적용하면 제로백 타임이 5.2초가 나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차의 연비다. 고성능 럭셔리 세단임에도 9.3km/l 수준으로 유로 5 기준을 모두 만족시킨다. 3.0 리터급 엔진이라해도 이 정도 수준이면 고개를 끄덕일만한데 4.8 엔진의 연비가 이 정도 수준이라니 대단하다.

최근 출시한 현대차 신형 에쿠스 4.6 엔진의 연비가 8.8km/l 이라고 자랑하는데 파나메라 앞에서는 그 입을 닫아야 할 것 같다.

포르쉐의 기술이 이처럼 놀라운 수준의 연비를 가능하게 했다. 더블 클러치인 PDK, 에어로 다이내믹을 적용해 주행저항을 줄이고, 최적화한 작동방식, 차가 멈추면 엔진이 정지하는 스타트&스톱, 마찰 유압 손실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100리터당 3.2리터의 연료 절약효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경량재료를 많이 써서 그만큼 차 무게를 줄인 결과이기도 하다. 철이 사용된 비율은 75%, 알루미늄이 22%, 마그네슘이 2%, 플라스틱이 1%를 각각 차지한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린다. 마치 기지개를 켜듯 한 차례 큰 소리를 냈다가 잦아들며 시동이 걸린다. 자명종 시계를 두꺼운 이불로 덮을 때 나는 소리처럼 자칫 시끄러울 수 있는 힘찬 엔진소리를 잘 튜닝해 듣기 좋게 다듬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엔진 소리를 듣다보면 ‘심장을 두드린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포르쉐 특유의 엔진 소리를 파나메라도 가졌다.

이중 접합유리 사이에 3장의 필름을 덧댔다. 이를 앞과 옆 창에 적용해 바람소리가 파고드는 것을 막았다. 배기 파이프 마지막에도 배기음을 튜닝하기 위한 추가 장치를 했다. 결코 조용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시끄럽거나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아닌 것은 소리를 일으키는 각 요소들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결과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즉각적으로 튀어 나간다. 일상주행영역에서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다. 조용함은 최고 수준의 승차감을 함께 만들어 내고 400마력의 힘은 언제든 필요한 만큼의 힘을 내준다.

고속에서도 파워는 여유있다. 시속 200을 한참 넘겨 250km를 바라보는 속도에서도 가속감이 탱탱하게 살아 있다. 참 경이로운 경험이다. 바람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운전자의 심리적 불안감은 크지 않다.

제동력도 돋보인다 고속에서 살짝 브레이크에 발을 갖다 댔다. 차가 흔들리면 낭패여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기우였다. 안정적으로 흔들림없이 차는 잘 멈췄다. 잘 달리는 만큼 잘 서는 차임을 실감했다.

엔진은 잔잔하게 돈다. 낮은 속도에서도 큰힘을 내기 때문이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에 훨씬 못미친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약 500rpm정도 상승한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코너에서 몸을 제대로 받쳐주는 시트의 우수함이다. 좁아보이는 시트인데 앉아보면 편하다. 편안함이 행여 코너에서 불안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기우다. 몸을 제대로 잡아주고 지탱해주는 시트다.

단단하다는 느낌이다. 에어서스펜션이 있어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택하면 차 높이가 25mm 낮아진다. 댐퍼와 스프링도 훨씬 단단해진다. 각 모드에 맞게 차 높이와 댐퍼, 스프링 상태가 변한다. 거친 길을 스포츠 모드로 달리는 데 노면의 흔들림은 전해지지만 차의 흔들림은 그보다 훨씬 못한 느낌이다.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반응이다.

리어 스포일러는 시속 90km에서 나와서 60km/h에서 들어간다. 알아서 움직이며 멋있는 모습과 다이내믹한 성능을 만들어낸는 부분이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슬라럼 테스트를 했다. 차는 거의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게 움직인다. 놀랍고 재미있다. 타이트한 코너를 강하게 돌아나갈 때 노면의 둔턱이 있어 순간적으로 차가 밀리는 느낌이 났지만 금새 차는 안정된 자세를 확보했다.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노면과 잘 밀착됐다.

7단 PDK 자동변속기는 변속효율을 극대화해 결과적으로 성능을 우수하게 해주고 연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변속 쇼크도 크게 줄여준다는 게 이 변속기의 특징이다.

오토 스타트 앤 스톱 기능이 있다. BMW가 수동변속기에 일부 이 기능을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자동변속기에 이 기능을 적용한 예는 찾기 힘들다.

차가 가다가 신호등에 걸려 멈추면 엔진도 시동이 스스르 꺼진다. 신기한 경험이다. 다시 출발을 위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스스로 시동이 다시 걸린다. 단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을 뿐인데 조용하던 차가 스스로 시동을 걸면서 부시시 일어난다.

처음 시동이 꺼질 때의 느낌이란 참 묘했다. 이런 부분들은 연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소소하게 낭비되는 연료소모를 줄이고 줄여 배기량에 비해 매우 우수한 연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티어링은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예리한 맛이 있다. 촉감은 마치 근육질 남성의 각진 배 근육을 만지는 듯하다. 완전히 핸들을 감으면 2.5회전에 못미처 다른 방향으로 감긴다. 보통의 차들보다 조향비가 좁다. 그만큼 예민한 핸들을 가졌다는 말이다.

파나메라 S는 포르쉐 유일의 FR 구동방식이다. 911은 엔진이 뒤에 있고 카이엔은 모두 사륜구동이다. 파나메라 4S와 터보는 역시 사륜구동이라 앞 엔진 뒷 바퀴굴림은 이 차가 유일하다. 뒷바퀴 굴림이지만 주행안정성과 코너링 성능 모두 매우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파나메라는 최고급의 또 다른 의미를 담았다는 데 있다. 화려한 편의장치와 수퍼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춘 오너드라이브 세단으로 쇼퍼 드리븐 카들이 판치는 최고급 럭셔리 세단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세상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카이엔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나 역시 실패를 예견했다. 하지만 보란듯이 성공했다. 파나메라가 나오면서는 분위기가 묘하다. 카이엔이 나왔을 때 처럼 “포르쉐가 세단을?” 이라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이 차의 운명을 속단하기가 조심스럽다.카이엔의 전력이 있어서다.

오종훈의 單刀直入
너무 넓다. 덕분에 실내 공간은 넓어져서 좋지만운전할 때 특히 좁은 길을 가거나 좁은 공간에서 주차할 때에는 운전자의 부담이 너무 크다. 가격도 비싼 차라 긁기라도 한다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겠다.좁은 대도시에서는 부담스러운 크기다. 스티어링휠을 조정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수동이다. 당연히 전동식으로 핸들을 조절하겠지 했는데 그런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효율을 중시하는 포르쉐의 전통을 생각하면 차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모터를 생략하고 수동으로 만든 것으로 짐작을 해본다. 하지만 이 차는 911이 아니다. 파나메라다. 그렇다면 편의장치도 무시해선 안되는 거 아닐까.아마도 포르쉐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