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911 터보를 새로 선보였다. 911은 포르쉐의 근본이다. 카이먼, 박스터, 카이앤, 파나메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디 스타일이 있지만 역시 포르쉐의 정수는 911이다. 포르쉐가 911터보를 처음 만든 것은 1974년. 이후 35년이 지나는 동안 여섯 번의 세대교체를 치렀고 이번에 7세대 911 터보를 선보였다.

미디어 시승을 위해 찾아간 곳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에 위치한 에스토릴 서킷이다. 25년 전인 84년. 포르쉐의 모터스포츠와 터보차저의 역사가 새로 쓰여졌던 현장이다. 정확하게 84년 10월 21일, F1 멕라렌 팀의 리키 라우다가 포르쉐 터보 엔진을 얹은 머신으로 우승을 했다. 전설의 현장에서 새로운 전설에 도전하는 셈이다.

야트막한 동산이 이어지면 오르락 내리락하며 적당한 와인딩 코스가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해안 절경지대를 달리는 코스를 즐긴 뒤 1랩이 4.2km에 달하는 서킷을 원없이 달렸다.

포르쉐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중 하나는 변치 않는 디자인이다. 디테일의 변화는 있지만 실루엣, 이미지 등 큰 틀에서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개구리가 주저않은 모습, 말똥말똥한 헤드램프, 뭇 사내들은 미치게 하는 빵빵한 엉덩이는 언제봐도 매력 만점인 포르쉐 만의 모습이다.

물론 소소한 변화를 찾는 재미도 있다. 안개등은 주간 드라이빙 라이트로 교체됐다. 옅은 눈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듯,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게 배치된 LED 램프는 방향 지시등이다. 머플러는 좀 더 키웠다. 힘 있게 보이려는 의도다. 리어 램프에도 LED 램프가 들어왔다. LED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요즘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같은 LED라 해도 포르쉐의 그것은 좀 더 달랐으면 하는 게 사람들의 기대다. 말랑말랑하고 기발한 포르쉐의 상상력이 여기에도 적용됐다면 좋겠다. 사이드 미러도 더블 암으로 바꿔 살짝 변화를 줬다. 19인치 휠 디자인도 예쁘다.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이면서 유니크한 모습이 아름답다. 갖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리어스포일러는 911의 특징이다. 1세대 911에서 리어 스포일러만큼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리어 스포일러는 고속 주행에서 확실한 효과를 보인다. 비행기처럼 공중 부양하려는 차를 지긋이 눌러줘 구동력을 잃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911 터보 쿠페의 리어스포일러는 시속 120km에서 약 35mm가 올라가고 시속 60km 미만으로 떨어지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카브리올레는 65mm도 좀 더 많이 올라온다. 운전자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 수동으로 스포일러 높이를 조절할 수도 있다.

911 터보를 만난 건 리스본 공항에서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도 없이 키부터 건넨다. 타보라는 것이다. 포르쉐는 이게 좋다. 단도직입. 백마디 설명보다 차를 직접 경험하고 타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초코렛 컬러의 카브리올레를 주차장에서 건네 받아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렸다. 차 높이 1300mm. 작은 키다. 잘 달릴 수 있는 조건이다.

운전석에는 로드 맵이 한 장 달랑 있다. 낯선 이국땅에 막 도착한 이들에게 차와 지도를 던져주고 몇시 까지 와라. 이제 전부다.

시동을 걸었다. 버럭 하고 톤을 높였다가 잦아드는 포르쉐 특유의 엔진소리가 여전하다. 이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은 포르쉐를 느낀다. 그리고 때로 감동한다. 이 소리가 거슬린다면 포르쉐와 궁합이 맞을 리 없다. 그런 이들은 절대 이 차를 사면 안된다.

포르쉐가 나타나면 길을 비켜준다. 유럽에선 통하는 법칙이다. 남의 길을 막는 법이 없다. 고속도로 위로 올라서자마자 200km로 올렸다. 이후 상당한 거리를 최저시속 200km로 달렸다. 아무런 부담이 없다. 250km/h도 심드렁했고 280km까지도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고속에 이를수록 가속이 더디다는 상식이 포르쉐에는 통하지 않는다. 시속 250km에서도 킥다운을 걸면 몸이 시트에 파묻히는 가속감이 살아난다. 포르쉐 할아버지라도 절대 미리 길을 비켜주는 법이 없는 한국이라면 아무리 잘해도 시속 250km 이상을 밟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늘은 쾌청했고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다. 지난 여름의 더위로 잘 익은 포도에 단맛을 더해주는 축복과도 같은 햇살이다. 지붕을 열고 그 햇살을 희롱하며 서쪽으로 달렸다. 시승 코스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카보 다 로카’가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우리로 치면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달리며 대륙의 서쪽 끝에 닿았다. 파란 바다, 그 너머의 파란 하늘은 장관이었다.

911 터보는 운전자의 마음을 잘 읽고 따라준다.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세팅하면 거칠게 질주하는 야성을 보이고, 노멀 모드로 되돌아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고 온순한 모습을 보인다. 2,000rpm에서 스포츠 플러스로 옮기면 4000rpm으로 급상승한다. 엔진 숨소리도 금속성이 낀 거친 소리로 변하고 서스펜션도 훨씬 더 단단해진다. 가속반응이 순식간에, 그리고 거칠게 올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버튼을 눌러 스포츠 플러스를 선택하면 스티어링 휠 왼쪽 스포크에 ‘스포츠 플러스’라는 표시가 뜬다. 왼발로 브레이크를,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10초 이내에 rpm이 4000에 고정되고 핸들 오른쪽 스포크에 ‘론치 스타트’ 표시가 뜬다. 브레이크 페달을 떼면 휠 슬립없이 쏜살같이 달려나간다. 제로백 3.4초를 가능케 해주는 런치스타트 기능이다. 이런 상태로 시속 200km 까지 속도를 올리는 시간이 11.3초에 불과하다.

새로 선보인 911터보는 7세대다. 74년 첫 911 터보가 나왔을 때 250마력 최대토크 340nm0-100 5.4 초, 최고시속 250km였다. 6세대 모델은 480마력, 620nm, 3.9초, 310km/h다. 7세대 모델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700nm, 0-100 가속 3.4초, 최고속도 312km를 자랑한다. 가장 빠르게 달리면 시속 200km까지 11.6초만에 도달한다. 숫자로만 봐도 대단한 발전이다. 911터보는 어느 시대였건 당대 자동차의 최대 수준의 스포츠카로 바통을 이어온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개의 터빈을 장착한 터보는 6기통의 힘을 극대화 시켰다. 엔진은 3.6에서 3.8로 배기량이 늘었고 다이렉트 퓨얼 인젝션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에 궁합이 잘 맞는 7단 PDK 변속기를 올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8% 줄였고 연비는 16% 향상시켰다. PDK는 수동변속보다 변속이 빠르고 연비도 우수하다는 변속기다.

배기량이 늘었는데 연비가 좋아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마술과도 같은 일이다.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높이는 것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효율을 원하면 성능을 포기하고, 성능을 원하면 효율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게 자동차 개발의 원칙이었다. 필요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이었다.

이젠 옛말이다. 날로 강화되는 기준에 맞춰 연비도 성능도 함께 향상 시켜야 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마술같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이유다. PDK가 비결중 하나다. 두 개의 클러치를 이용해 변속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것. 변속 시간이 줄어 동력 손실이 함께 줄었고 변속 타이밍이 빨라 가속성능도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얌전하게 움직이면 포르쉐 답지 않게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2000rpm 전후로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나게 운전하면 이 또한 재미있다. 얌전하게 조용조용 달리면 제법 편안한 상태가 된다. 무조건 달리는 데 맞춰 엔진 마운팅을 한 게 아니라 스포츠카의 특성과 편안한 승차감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차를 만들었다. 저속 주행시에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그만 할 때까지’ 얼마든지 강하고 터프하게 움직일 준비가 돼 있는 차다.

포르투갈의 지형은 얕은 구릉지대가 이어진다. 도로 역시 직선과 코너가 이어지며 오르락 내리락거린다. 숨 죽이고 얌전히 사뿐 거리며 달리다가도 곧게 펴진 직선로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가속 페달을 밟으면 옆에 함께 달리던 차들이 순식간에 사이드 미러에 점으로 사라진다.

에스토릴 서킷은 ‘카보 다 로카’ 근처에 있다. 1랩의 길이가 4.2km에 이르는 F1 경기가 열리는 최고 수준의 서킷이다. 모두 13개의 코너가 이어지며 짜릿한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곳. 물론 때로는 그 코너들이 운전자를 괴롭히기도 한다. 첫 날에는 서킷에 적응하기 위해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 차를 탔다. 전문 강사를 옆에 태우고 달렸다. 늘 느끼는 거지만 불공평한 게임이 된다. 과속하지 말고 아웃인 아웃을 차근차근 밟으며 운전하는 게 빠르게 가는 비법이라고 하지만 정작 강사들 자신이 시범주행을 할 때에는 드리프트를 예사로 구사하며 화려한 테크닉을 마음껏 뽐낸다. 어쨌든.

도로 위의 레이싱 카를 표방하는 911 터보가 레이싱카들이 달리는 트랙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2일간 모두 50바퀴에 가깝게 지겹도록 서킷을 돌고 또 돌았다. 처음에 서먹하던 여인과 친해지듯 서킷이 점차 익어가면서 속도도 따라서 높아졌다.

좁은 코너에서 시속 100km, 크게 원을 그리는 마지막 코너에서는 시속 150km 이상으로까지 속도를 높이며 코너링을 할 수 있었다. 직선로에서는 시속 200km까지도 달렸다. 차의 성능이 운전자의 드라이빙 테크닉을 뛰어 넘는다. 코너가 이중으로 이어지는 곳, 급한 코너가 있는 지역에서는 균형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강하게 몰아붙이는데도 끄덕하지 않는다.

코너에서 한 치 밀림 없이 돌아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타이어를 슬립시키려고 속도를 높여나갔으나 결과는 911 터보의 승리였다. 타이어가 밀리는듯하면 어김없이 PSM이 개입해 자세를 잡았다. PSM을 끄고 달려도 크게 이상은 없지만 심리적으로 압박이 크다. 고속에서는 PSM을 껐다는 사실 때문에 자꾸 위축된다. 수평대향으로 뒤에 엔진을 놓았고 네바퀴 굴림으로 달리는 방식이어서 언제나 뒤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느낌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브레이크다. 시속 280km을 넘보는 고속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에 발을 올릴 때에는 무척 조심스럽다. 머리 끝이 삐죽거릴만큼 긴장하며 제동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속도를 줄있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브레이크가 잘 받쳐줘야 운전자가 마음놓고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브레이크는 13.8인치 V 디스크가 앞뒤로 배치됐다. 캘리퍼에 적용된 실린더가 앞에 6개, 뒤에 4개다. 옵션으로 PCCB를 장착할 수도 있다. 포르쉐 세라믹 콤포지트 브레이크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911 터보는 한국에도 들여올 계획이다. 포르투갈 에스토릴 서킷에서 시작된 911 터보의 전설이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포르쉐가 왜 컨버터블의 지붕을 소프트탑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시승을 마치고 난 뒤 포르쉐 개발담당에게 질문했다. 조금이라도 더 무게를 가볍게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범답안이지만 속시원한 답은 아니다. 하드탑이 대세인 이때에 시커먼 천을 지붕에 이고 달리는 모습이 그리 샤프해 보이지 않다. 소프트 탑이 가벼운 장점은 있지만 소음이 크게 들어오는 단점이 크다. 하드탑에 비해 외부의 공격 등으로 쉽게 찢어질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로서는 부담이 된다. 참고로 소프트탑의 지붕 무게는 42kg에 달한다. 시속 50km 미만에서는 움직이면서도 지붕을 여닫을 수 있다. 작동 시간은 20초. 알루미늄으로된 33kg짜리 하드탑을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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