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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와 힘, 그리고 낭만을 가진 차 G37 컨버터블

컨버터블을 타기엔 봄 가을이 제격이다.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에 지붕을 벗기고 타면 시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7, 8월 무더위에 햇볕 쨍한 날 지붕을 벗기고 한 시간을 타면 얼굴이 홀랑 익어버린다. 더울 땐 컨버터블이고 뭐고 지붕은 물론 창문도 꽁꽁 닫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타는 게 최고다.

인피니티 G37 컨버터블을 가을에 만났다. 늦은 봄에 한국에 온 녀석을 가을에서야 만났으니 늦은 데이트인 셈이다. 그래도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의 만남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다. 일찍 만났다면 지붕열고 다니느라 영락없이 얼굴이 홀라당 익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컨버터블의 지붕을 활짝 열어제끼고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른 깊은 가을하늘을 만끽하며 달리는 맛은 경험한 이들만이 알 수 있다. 쭉 뻗은 자유로 위로 G37 컨버터블을 올렸다.

G37 컨버터블이 첫 판매에 나선 것은 지난 6월에 미국에서였다. 그리고 2주 후에 한국에서도 시판에 나섰으니 이 정도면 미국과 거의 동시라고 해도 될 정도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처음이다. 많은 수입차들이 있어 ‘인피니티’라는 브랜드도 그냥 그중 하나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피니티를 만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인피니티를 탈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인 이유다. 다른 하드탑 컨버터블이 그렇듯이 G37 컨버터블도 뚜껑을 닫으면 오픈카인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냥 투도어 쿠페로 보는 경우가 많다. 지붕을 여는 깜짝 변신을 하면 비로소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둥그레진다. 이 차는 두 얼굴을 가졌다. 다른 하드탑 컨버터블들 처럼 화끈하게 벗어제낀 토플리스 차림, 그리고 단정하고 날렵한 매무세를 가진 쿠페가 그것이다.

옷장을 열고 뭘 입을까 고민하는 것 처럼 이 차의 운전석에 앉을 때에는 고민하게 된다. 열고 섹시하게 달릴까, 닫고 얌전하게 움직일까. 기분 가는대로 선택하면 차는 충실하게 주어진 몫을 다 한다.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게 버거운 이들에게는 컨버터블이 어울리지 않는다. ‘끼’ 있는 사람들이 이 차와는 궁합이 맞는다. 쏟아지는 시선을 모르는 척 외면하면서 유유히 달리는 맛.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열 받고 화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차를 타야 한다. 그래서다. 나쁜 사람은 컨버터블을 탈 수 없다. 지붕 열고 달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데 나쁜짓을 할 수는 없다. 착한 사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 자신있게 지붕 열고 달리는 거다.

육감적인 미녀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기분으로 G37 컨버터블의 몸매를 찬찬히 뜯어 보자. 둥글둥글한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헤드램프와 그릴, 보닛, 지붕을 닫았을 때의 루프라인 들이 부드럽고 볼륨감 있게 만들어졌다. 30대의 농익은 여인의 모습이다.

지붕을 벗기면 20대의 날렵한 자태가 드러난다. 부드러운 루프가 사라지고 날카롭게 세워진 A 필러를 중심으로 긴장감 주는 라인이 전면에 보여진다. 지붕 하나 벗겼을 뿐인데 차의 인상은 크게 달라진다.

스크레치 실드 페인트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가벼운 스크레치는 차가 스스로 복원한다는 시스템이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람의 피부처럼 차 표면에 생기는 가벼운 흡집을 가만히 놔둬도 차가 스스로 원상태로 복원한다는 신기술이다. 이를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데 그렇다고 생짜로 차를 긁어댈 수는 없는 일, 참느라 힘들었다.

잘 정돈된 인테리어는 충분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특히 한지 느낌을 전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느낌이 좋다. 우아하고 세련됐다. 가죽과 나무로 제한되는 인테리어 소재에 인피니티만의 독특한 소재를 잘 개발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우아하다. 키는 주머니에 그냥 넣어두면 된다. 그 상태로 운전석에 앉아서 우아하게 버튼을 누르면 부르르 온몸을 떨며 심장이 박동을 시작한다. 손가락 하나로 잠자는 차를 깨운다. 요즘엔 버튼식 시동키가 고급차의 상징처럼 되면서 오히려 희소성이 떨어졌다. 너도나도 버튼식 시동키를 달고 ‘나 고급이야’하고 떠드는 세상이다. 고급차에 쓰는 버튼식 시동키를 사용했으니 준중형차가 고급스러워졌다고 하는 식이다. 이제는 준중형차도 사용하는 버튼식 시동키가 됐으니 이젠 그것만 가지고는 고급스럽다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4인승이다. 뒷좌석에 둘이 탈 수 있다. 컨버터블인데 4명을 태운다는 건 나름 실용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렇다고 달리는 맛이 줄지는 않았다. 밟아보면 안다.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충분히 낸다. 혼자 타든 넷이 타든 마찬가지다.

19인치 광폭타이어는 사람으로 치면 다리에 해당한다. 마치 축구선수의 장딴지 같은 타이어다. 차체를 지탱하며 단단하게 노면을 물고 달리는 고성능 타이어. 그 자체가 차의 존재감을 더해준다.

엔진은 닛산이 자랑하는 VQ 엔진의 최신버전으로 329마력, 최고 출력 37kg.m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 1905kg으로 마력당 무게비(1마력이 감당해야하는 무게 비율)는 5.8kg에 불과하다. 스포츠카 수준의 순발력을 낼 수 있는 조건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가볍게 내닫는다. 차체는 가볍게 움직이고 엔진 소리는 굵은 톤으로 깔린다. 서스펜션은 딱딱하고 때에 따라서는 다소 거친 반응을 보인다. 저속에서는 다소 튄다는 느낌을 주지만 고속에서는 정반대다. 시속 160km를 넘기고 200km/h를 넘보는 속도에서 시승차는 노면에 달라붙어 안정되고 오히려 더 부드러운 반응을 보였다. 역시 고속주행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인피니티’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무한대’ ‘무한질주’의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달리기에 강한 차 일수밖에 없는 이유가 브랜드 이름에 담겨 있다.

그래도 지붕을 열고 달릴 때에는 너무 빠르면 의미가 없다. 지붕을 열고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고, 머리 위로 스치는 바람도 적당히 즐기려면 시속 100~120km가 최대 속도다. 그 속도 범위 안에서 차와 드라이버, 그리고 차창 밖 세상이 하나가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컨버터블만의 매력이다.

수동변속모드를 가진 7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했다. 연비는 9.4km/l, 이산화탄소배출량은 km당 250g이다. 연비가 그리 우수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운전자가 체감으로 느끼는 메이커발표 연비와의 편차는 크지 않다.

코너링은 부담이 없다. 다이내믹 컨트롤, 즉 차의 움직임을 파악해 엔진 구동력과 브레이크 등을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VDC 덕분이다. 후륜구동이 코너링에서 재미있는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지만 때로 급격한 오버스티어로 차가 미끄러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VDC는 그런 위험을 제어해준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차를 제어하지는 못한다. 이는 인피니티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차도 물리적인 법칙을 완벽하게 이겨내지는 못한다. 안전장치 믿고 위험한 운전을 하면 안되는 이유다. 안전장치는 어디까지나 안전 보조장치일뿐이다. 안전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장치는 없다.

D에서 수동변속모드인 DS로 옮기면 rpm이 500 가량 상승한다. 차가 예민해진다. 조금 더 거칠어지는 느낌이다. 레드존은 7500rpm. 수동으로 옮기면 자동변속은 사양한다. 1단에서 90, 2단에서 150, 3단에서 200km/h를 각각 돌파한다. 수동모드로만 운전할 때에는 7단 변속기가 큰 의미 없어진다.

시프트 다운은 엔진 브레이크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속도가 맞지 않아 시프트 다운이 안될 때에는 ‘삐삑’ 거리는 소리가 난다. 변속이 안됐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굳이 계기판을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변속이 이뤄졌는지 아닌지 소리로 알 수 있어 좋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방시야를 놓지면 안되는 운전자에게는 유용한 기능이다.

보스 오디오는 이 차에도 어김없이 장착됐다. 닛산과 인피니티, 그리고 르노삼성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부분중 하나가 바로 보스 오디오다. 보스가 오픈카에 적용하기 위해 특별히 개발했다는 ‘오픈 에어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된 오디오다. 모두 13개의 스피커가 입체적인 음향을 빚어낸다.

G37 컨버터블에는 커튼 에어백이 달렸다. 컨버터블에는 커튼 에어백을 장착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석이었는데 인피니티가 그 그 한계를 넘어섰다. 도어 내부에 장착해 아래에서 위로 펼쳐지는 커튼 에어백을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뒷좌석에 에어백 센서와 연동하는 팝업 롤바를 적용, 전복 사고시 탑승객의 머리 부분을 보호한다.

G37 컨버터블의 가격은 7,280만원(VAT포함)이다. 7,000만원대 세단으로는 아우디 A6 3.0, TTS쿠페, BMW 328i 컨버터블, 528i스포츠, 재규어 XF, 벤츠 E280, 포르쉐 박스터 S, 렉서스 GS 350, 볼보 S80 등이 있다. 가격대로 보면 꽤 경쟁이 심한 시장이다. 4인승 하드탑 컨버터블로 쿠페와 컨버터블 두 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차라는 점에서 G37 컨버터블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차를 움직이려고 변속기를 P에서 빼면 덜컥하는 쇼크가 발생한다. 주행중에 생기는 변속충격은 아니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정지 상태에서 생기는 충격이라 실제 이상으로 더 크게 받아들여진다. 지붕도 수납되는 마지막 순간에 덜컹하는 쇼크가 생긴다. 좀 더 부드럽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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