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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출장길에 그리운 것은 고추장이나 김치 뿐 아니다. 모국어의 갈증이 엄청나다. 특히나 영어가 시원치 않은 기자의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현지 업체의 프리젠테이션을 한국어로 들을 때의 기쁨이란.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기분이다.

윤수정씨를 만났을 때 그랬다.지난 6월, BMW 드라이버 트레이닝 취재차 독일을 찾았을 때였다. BMW의 고성능 모델을만드는 M의 세일즈 마케팅 부서에서 BMW 드라이버 트레이닝의 마케팅 담당자가 바로 그녀였다.짧은 시간에 명쾌하게 드라이버 트레이닝을 안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BMW 독일 본사에 근무하는 한국 여성이라는 사실이 기자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렸다.아쉽게도 당시에는 촉박한 일정 탓에 차분하게 앉아 인터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독일 출장에서 돌아와서도 한참이 지난 뒤에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 몇 가지를 물었다.

윤수정. 올해 나이 38.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했다.BMW 코리아에 입사한 뒤독일 본사로 파견근무를 갔다가 발탁된 케이스다. BMW에는 비슷한 경우가 몇이 더 있다.다른메이커에서는 드믄 예다.이유는 둘중 하나일 것이다. BMW 코리아에 유능한 인재가 많기 때문이거나, BMW가매우 오픈 마인드된조직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윤수정씨는 BMW M의 마케팅 팀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벤트, 전시 등을 총괄한다. 오는 10월, 오스트리아 Salzburgring 레이스 트렉에서3주간BMW X5 M, BMW X6 M 고객 드라이빙 런칭행사를 주관할 예정이다.이메일로 보낸 질문에 답안지 쓰듯 꼼꼼히 적어온그녀의 대답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고성능 차들을 주로 만드는 M에 여성 마케팅 담당자여서 의외였다.
“솔직히 마케팅에는 여성비율이 높다. 고객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찾는데 있어서는 남녀차이가 없는 것 같다.”

-M의 분위기는BMW와다를 것 같은데.
“BMW M에서 일하는 이들은 굉장한 자부심이 있다. 자동차 개발기간이 약 7년간이라고 치면, 2세대 혹은 3세대째 M3개발에 일하면서 오랜 경혐을 쌓은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전략구상이든지 많은 프리젠테이션보다는 ‘Just do it’ 분위기가 강하다. BMW 내에서도 M은 약간 특별한 곳이라고 인식한다.”

-M에서 일을 하게된 계기는?
BMW 코리아에서1996년에 세일즈& 마케팅 담당 부사장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했다. 2000년말에 2년 예정으로 BMW M에 파견근무를 나왔다. 그러다가드라이빙 마케팅팀을 맡겨줘서 2002년부터 독일 본사의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BMW 본사에 근무중인 한국 직원은세명이 더 있다.디자인, 모터사이클,금융 파트에 있는 것으로 안다.”

-독일 회사와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에서는 새로운 식구가 회사에 오면 간단하게 환영식을 하거나 가까운 팀원들이 저녁을 같이 하는데, 독일은 그러한 관례가 전혀 없다. 독일에 와서 첫주에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에게 저녁이나 한번 먹자고 하니까 의아해 하며 스케줄을 보더니 3주뒤에 시간이 난다고 했다. 회사 일과 사적인 일의 구분이한국에 비해 훨씬 분명하다.한국은 결혼을 하면 회사동료들을 많이 초대하는 것이 맞으면, 여기서는 간단하게 회사에서 케익을 먹으며 한 30 -40 분간 수다를 떨며 카드와 간단한 선물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BMW 드라이빙 트레이닝을 어느 단계까지 받아봤는가.
기본 3단계는 다 받아보고, 전설적인 뉘른베르크 서킷과스웨덴에서 M3 윈터 트레이닝을 받았다. 덕분에 운전을 한국에서 보다는 잘하지만, 독일에서 잘하는 편이 아니다.

– 어떤 차를 타나.
“내 차는 없다. 회사에서 1년에 한번씩 회사차를 바꿔 준다.5 시리즈, 3 시리즈, Z4, 미니 클럽맨 등 아주 다양한 차를 탔다. 지금은118d을 운전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특별한 것이 있다기보다, 아주 단순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하게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독일 정식직원이 되어서 아주 많이 배우고 여기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았는데, 계속해서 많이 배우고 새로운 분야를 맡는 것이다.”

-외국 본사에 발령받아 10년 가까이 잘 적응하며 지내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삶을 살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원하면 된다.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면 도착할수 있다.”

-독일 사회에서 살아보니 어떤가.
“굉장히 꾸준한 사회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매우 신중한 사회다.그래서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업을 계속 하는 중소기업이 많고, 대기업보다는 가족기업이여기 경제를 지탱한다. 사람들은 많이 검소해서 단돈 1유로도 낭비라고 생각을하면 쓰지않는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엔이 사람들이1, 2유로에 왜 그럴까 했는데, 많이 배웠다. 생일이든 결혼이든 매우 검소하다. 처음에는 정이 없는 나라인줄 알았는데나중에 사는것의 차이일뿐, 마음 쓰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에 잘왔다고 생각될 때는.
“다양한 민족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여서내가 처음부터 이 사회의 일원으로 느껴졌다. 휴가도 많아서 독일에 와서 스키를 배우고 일주일씩 알프스산맥에 가고, 여름휴가는 스페인의 섬들에 놀러가고, 친구들과 주말에 이태리에 쇼핑가고, 사는 것이 많이 풍족하다.”

-한국이 생각날 때는.
“아무래도 명절때는 한국이 생각난다.특히 가을에 추석이 오면 그렇다. 여기는 송편이 정말 없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은있는지. 있다면 언제쯤?
“돌아올 계획도 안돌아올 계획도 없다.”

가족관계를 묻는 질문 뒤에는”미혼”이라는 답을, 서울과 뮌헨 중 어디가 더 좋으냐는 유치한 질문 뒤에는 “둘 다 좋지요”라는 정답을 적었다.

독일에서의 짧은 조우, 그리고 이메일을 통한 질문과 답변 어디에도 ‘열정’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그는없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인터뷰를 통해 남는 것은 더 많은 궁금중이다.훗날 후속 인터뷰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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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