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디트로이트에서 처음 소개됐던 뉴 제너레이션 SLK가 한국에 나타난 것은 7월이었다. SL, CLS와 함께 드림카 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석 대의 차를 한 차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묻어날 만큼 이 들 세 차종은 뭇사내의 감정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더 있는 차다.

기자가 SLK를 처음 만난 것은 96년이었다. 그때만해도 하드톱 컨버터블은 생소했다. 무려 10여년이 지나서야 하드톱 컨버터블이 유행을 이루고 있음을 보면 SLK의 선견지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석대의 차를 모두 타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차를 고를 입장은 아니다. 행여 줄 잘못서면 안태워줄까, 시승을 신청하고 줄 잘서서 기다렸다. 첫 인연은 벤츠 SLK다. 그중에서도 AMG 키트로 무장한 SLK AMG 패키지를 탔다. AMG 18인치 알로이휠, 앞뒤 범퍼, 사이드 스커트, 스포일러, 스포츠 서스펜션 등이 AMG 패키지를 구성한다.AMG 패키지가 아니면 위 사양들이 빠지고 17인치 타이어가 적용된다.

드림카 삼총사중 가장 작은 콤팩트 로드스터

SLK는 3종의 드림카 중에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콤팩트 로드스터다. SLK는 독일어 “sportlich, leicht, Kurz”의 머리글자로 작은 스포츠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SLK 클래스에는 배기량 1.8ℓ부터 5.5ℓ까지 모두 4개의 엔진이 올라간다. 이중 1.8ℓ 엔진에만 수퍼차저가 장착된다. 국내 시판 모델은 3.5 가솔린 엔진을 얹은 SLK 350과 SLK350 AMG다.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머리를 잔뜩 숙인 맹수처럼 땅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뒤에서 보면 더 확실하게 이를 알 수 있다. 차 높이가 1300mm에 불과하다. 맹수치고는 작다. 길이는 4미터를 겨우 넘고 너비는 1.8m에 이르지 못한다. 작지만 우습게 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야무지고 강한 이미지가 물씬 묻어 있다.

조금 과장된 느낌을 주는 정면 모습은 근육에 힘을 준 보디빌더의 몸 같다. 힘준 근육들이 벌떡이며 일어나 적당한 볼륨감이 있는, 손으로 누르면 탱탱한 근육의 반발력에 튕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보닛이다.

옆에서 보면 완전히 앞으로 쏠린 모습임을 알 수 있다. 100m 경주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처럼 엉덩이를 치켜들고 앞으로 쏟아질 것 처럼 기울어진 라인들이 부담스러울만큼 역동적이다. 둥근 지붕선과 앞으로 강하게 꽂히는 디자인이 서 있어도 달리는 것 같다. 시트는 헤드레스트까지 일체형으로 됐고 목 부분에 송풍구가 마련됐다. 히터의 더운 바람이 그 곳에서 나온다. 추운 날씨에도 지붕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바람이다.

지붕을 여닫는 관절 부분에 쇠붙이들이 드러나 있다. 강철이 드러난 게 드러난 뼈를 보는 것 같아 영 거슬린다. 고무로 감싸거나 천으로 가리거나 했으면 좋겠다.

몸이 제일 먼저느끼는 소리

손이 주로 머무는 곳, 스티어링 휠과 변속레버는 적당히 굵다. 손에 쏙 잡힌다. 손맛의 기본이다. 손과 발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귓가를 간질이는, 혹은 머리카락 휘발라는 바람을 맞는 것이 컨버터블을 타는 맛이 아닐까. 지붕을 열고 길 위로 나섰다.

제일 먼저 몸이 느끼는 건 소리다. 조용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것도 아니다. 속도를 올릴수록 톤이 높아지는 배기음은 잘 튜닝된 나팔소리다. 굵고 낮은 소리로 출발해서 속도를 올리다보면 좁은 관을 빠져나오는 고음의 배기음이 귀를 자극한다. 6,000~7,000rpm에서의 배기음이 특히 매력적이다.

SLK는 컨버터블인 동시에 스포츠카다. 몸무게는 가볍고 힘은 세다. 마력당 무게비가 5.0kg에 불과하다. 그래서 빠르다. 작아도 강한 게 아니라 작아서 강한 놈이다. 제로백 타임이 5.4초다. 펀치력 좋은 스프린터 타입이다. V6 DOHC 엔진은 스트로크가 짧다.

가속페달을 통해 차의 힘이 느껴진다. 305마력의 힘은 언제든지 이 작은 차를 원하는 속도만큼으로 끌고 나간다. 마음 먹고 밟으면 말 그대로 눈썹이 휘날린다. 차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면서 몸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색다르다. 터보나 수퍼차저가 주는 느낌과는 다르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속도를 높인다. 겨우 둘이서 타는 차가 힘은 남아돈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도로방지턱같은 돌기물을 넘을 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타이어와 서스펜션을 통해 전해지는 쇼크는 시트를 거쳐 엉덩이로 있는 그대로 전달된다. 단단하지만, 잔진동은 거의 없다.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불쾌하지 않은 이유다.

강하게 때로 부드럽게, 7단 자동변속기

7단자동변속기는 넓은 속도 영역을 잘게 쪼게 최적의 기어를 쓸 수 있게 해 효율을 높여준다. 기어비는 1단 4.38에서 2단2.86으로 간격이 넓지만 이후 7단까지 촘촘하게 배치됐다. 5단 변속비가 1대1, 이후 6, 7단이 오버 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엔진속도를 높게 올리지 않아도 차는 편안하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시속 100km일 때 엔진 회전수는 2,000rpm에 머문다.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하면 7,500rpm 근처에서 자동 변속이 이뤄진다. 7,500rpm까지 끌어올리면 1단 60km/h, 2단 90km/h, 3단 130km/h, 4단 180km/h에서 각각 시프트업이 일어난다. 그 이상의 변속 시점을 확인하기는 도로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속 100km일 때 3단 5,000rpm, 4단 3,750rpm, 5단 2,750rpm, 6단 2,250rpm, 7단2,000rpm을 기록한다. 같은 속도라도 파워풀 하게, 때론 비단길처럼 원하는 느낌의 속도로 맞출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같은 100km/h이지만 와인딩 코스가 이어지는 북악스카이웨이를 5,000rpm으로 몰아칠 수 있고, 늦은 밤 지친 몸을 편안하게 싣고 2,000rpm으로 달릴 수 있는 차다.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압권이다. 타이트한 코너를 시속 100km 넘게 진입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운전자가 컨트롤한 자신이 있다면 조금 더 밟아도 될 듯한데 계기판을 확인하는 순간 가속페달을 밟은 오른 발의 힘을 빼버린다. 계기판을 보지 않으면 좀 더 거칠게 몰아칠 수 있겠지만 주행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본능적인 반응이 속도를 줄이게 한다. 차는 준비가 돼 있는데 사람이 덜 준비된 셈이다. ESP는 늘 차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미끄러지는 순간 개입한다기보다 미끄러지지 않게 사전 개입하는듯 했다. 그런 안정성이 과감하게 고속 코너링을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를 과신해선 안된다. 절대적인 안전장치는 아니라는 말이다.

투자비 건지기 힘든 컨버터블이그래도 필요한 이유판매가격은 SLK350이 8,190만원, AMG 스포츠 패키지가 8,790만원이다. 럭셔리 하드톱 컨버터블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세컨드 카의 성격이 강한 차다. 바로 2인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팔릴 차는 아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차다. 이를 필요로하고 알아보는 이들이 적지않게 있어서다.

편하게 탔지만 사실 컨버터블을 만들기 쉽지 않다. 컨버터블을 만드는 국내 메이커가 없다는 것만봐도 알 수 있다. 현대차가 한 때 컨버터블 제작을 검토했지만 하드톱을 제작하는 회사에 컨설팅 비용만 물어주고 계획을 접었을 정도다. 투자비용을 회수할만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동차 메이커로서는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차종이 바로 컨버터블이다. 그래도 컨버터블이 필요한 것은 스포츠카와 더불어 컨버터블을 갖춰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종합자동차 메이커의 온전한 면모를 갖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종훈의 單刀直入.둘이 타는 실내는 여분의 공간이 없다. 시트를 뒤로 누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가방 하나 제대로 놓아둘 곳이 없다. 혼자 탄 다면 조수석에, 둘이 타면 트렁크에 가방을 던져놓아야 한다. 그나마 지붕을 벗긴 상태라면 트렁크에 짐을 넣어두는 것도 쉽지 않다. 두께가 있는 짐은 지붕을 닫은 상태에서 트렁크를 열어 집어 넣어야 한다.공간 배려만 놓고 보면 야박하다 할 정도다. 작은 차지만 2인승이어서 자투리 공간을 만들어 놓을 수는 있을 텐데 아쉽다. 의외의 변속쇼크도 아쉽다. 클리핑 주행이나 정지상태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간혹 강한 변속충격이 발생한다. N-D로, D-N으로 변속레버를 옮겨도 덜컥대는 충격이 온다.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