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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같은 새 전사 재규어 XF SV8

재규어의 라인업에 XF가 더해졌다. 컨셉트카 C-FX의 양산형 모델이다. 컨셉트카의 신비로움을 걷어내고 도로 위의 전쟁에 뛰어든 재규어의 새 전사다. 쿠페 스타일의 5인승 세단. 재규어의 라인업으로 보면 허리에 해당한다. 엔트리 모델인 X 타입이 있고 S 타입과 XK 사이에 XF가 자리한다고 보면 된다. 재규어의 각 모델들은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각기 확실한 개성이 있다. XF는 재규어로서는 무난한 편에 속하는 5인승 세단이다. 2.7 디젤과 4.2 SV8 가솔린 두 종류의 엔진이 있다. 오늘 시승할 차는 재규어 XF SV8 4.2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주인은 이제 인도의 타타그룹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다. 이제 인도의 기업이 영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인수한 것이다. 현대차가 토요타를 인수한 셈이라고나 할까. 지켜보는 입장이 이런데 정작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치우천왕 닮은 재규어 앰블렘

각설하고 본론에 들어가자. XF의 이미지는 그동안 재규어의 디자인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낯설다. 새 차가 나오면 늘 그렇듯 서로 낯을 익힐 시간이 없었던 데서 오는 서먹함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그 한가운데 자리한 재규어의 앰블럼이 있어 이 차의 정체성을 말해주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선과 디자인 요소들은 기존의 재규어와는 확실히 다르다. 재규어의 얼굴을 형상화한 앰블렘은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의 상징 치우천왕을 연상시킨다. 울룩불룩하고 선이 많이 간 보닛, 두 개의 원형 램프를 다시 하나로 묶은 헤드램프는 재규어의 당당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작은 차에 어울릴 디자인이다.

옆모습은 아름답다. 쿠페처럼 뒤로 가면서 낮아지는 루프라인이 부드러운 인상을 전한다. 굵고 강한 C 필러, 높게 배치한 숄더라인이 눈길을 끈다. 숄더라인이 높으면 실내에 푹 파묻히는 느낌, 차에 안겨있어 보호받는 느낌을 준다. 대신 실내에서 느끼는 개방감은 다소 줄어들게 마련이다. 프런트 오버항은 거의 없다.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 바깥으로 앞 타이어를 배치했다고 보면 된다. 리어오버항은 긴 편. 덕분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깊은 트렁크를 만들 수 있었다.

시동 걸면 부팅될 것같은 자동차

재규어 XF의 인테리어는 색다르다. 10년즘 뒤에 만들어질 미래의 차에 앉아있는 느낌을 준다. 색다른 부분이 많아서다. 변속레버가 그랬다. 둥근 스위치를 돌려가며 변속하는 로터리 방식은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처음 만나는 생소함이 있다. 시동 버튼도 마치 컴퓨터의 전원 버튼 같다.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게 아니라 부팅이 될 것 같은 버튼이다. 시동을 끄면 막혀 있다가 시동이 걸리면서 열리는 송풍구도 재미있다. 로봇 같다. 구석구석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돋보인다. 이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제품의 경쟁력이다. 다른 차에 없는, 나만의 것. 그런 기술, 그런 디자인이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운전석에 앉으면 완전 독립된 공간을 실감한다. 조수석과의 사이에 마치 베를린 장벽처럼 높은 벽이 있다. 넘나들기 쉽지 않은 높이다. 옆 자리에 앉은 애인과 뽀뽀하기도 쉽지 않겠다. 뒷좌석 역시 센터 터널이 높게 올라와 있어 앞뒤 모두 좌우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있다. 5인승 세단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다섯을 다 태우려면 한 사람은 폼이 망가진다. 네 사람만 타는 게 좋겠다. 그래야 탑승객 모두가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겠다.

재규어 XF에는 슈퍼차저가 장착됐다. 슈퍼차저는 엔진출력으로 압축기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4.2ℓ 엔진의 최고출력은 420마력으로 6,250rpm에서 57.1kg.m의 최대토크는 3,500rpm에서 각각 터진다. 마력당 무게비 4.4kg, 토크당 무게비 32.5kg으로 제로백 타임은 5.4초다. 성능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차와 하나 되는 무아지경의 짜릿함

변속레버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고 조그셔틀 버튼을 돌려 변속을 하는 게 영 이상하지만 색다른 경험이다. 가속페달을 밟아 도로 위로 올라섰다. 4리터가 넘는 배기량에 넘치는 힘으로 무장한 차여서 여유가 있다. 늘 힘을 유지하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2,000rpm을 유지하며 여유있고 부드럽게 달리다가도 필요한 순간에 킥다운을 하면 차는 힘차게 달려간다. 호쾌한 달리기다. 날개를 펴면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가속감은 중독성 강한 짜릿한 쾌감을 전한다. 쭉 뻗은 도로 위에서 차와 드라이버가 하나가 되어 달리는 무아지경의 짜릿함은 아무 차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동변속 기능을 이용해 시속 100km일 때 rpm을 체크했다. 2단 5,250, 3단 3,500, 4단 2,500, 5단 2,000, 6단 1,500rpm이다. 같은 속도에서 아주 편안한 실키 드라이빙에서 자극적인 엔진소리를 즐기는 다이내믹한 드라이빙까지 모두 가능했다. 원할 때, 원하는 속도는 물론 원하는 반응까지도 택할 수 있는 셈이다. 운전자의 기분에 맞출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 차다.

1단에서 2단으로 급하게 시프트 업을 하면 때로 강한 쇼크가 발생한다. 2단은 시속 120km까지 커버한다. 3단은 170km/h, 4단은 230km/h에서 각각 변속이 일어난다. D모드에서 시속 80~90km 사이로 움직이면 rpm이 1250에서 움직이는데 S모드로 옮기면 2000rpm으로 올라가면서 예민해진다.

의외로 시속 80km에서 노면 소음이 꽤 들렸다. 엔진과 타이어 소음이 조용해 상대적으로 노면 잡소리가 도드라진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래도 이 차가 럭셔리 세단이라면 방음대책은 좀 더 철저해야 한다. 속도를 점차 올려서 고속주행을 시도하면 A 필러에서의 풍절음과 굵은 엔진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인상적인 소리를 만들어 낸다. 긴장감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요소다.

고속주행안정성은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워낙 고성능에 포커스를 둔 차라 높은 속도에서도 차의 안정성은 돋보였다. 흐트러짐 없는 발놀림이 새삼 놀랍다. 체감속도는 실제 속도를 훨씬 밑돌았다. 시속 200km를 무시로, 부담 없이 공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속으로 달려도 운전자의 불안함은 그리 크지 않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고속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스티어링을 좌우로 조작했다. 정확하게 작동하는 DSC가 느껴진다. 차는 밀림이 없었고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낮췄다. 잘 달리는 만큼 잘 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 차는 알고 있다.

앞에는 35 시리즈, 뒤에는 30 시리즈 타이어를 신었다. 강한 구동력을 위해 뒤에는 편평비가 높은 타이어를 끼웠고 조향바퀴에는 한 사이즈 아랫급인 35 시리즈를 신겼다. 트렁크에 숨겨진 스페어 타이어는 템퍼러리 타이어로 빨간색 휠에 135/80 R 18 사이즈다. 타이어는 좀처럼 비명을 지르는 법 없이 어떤 속도에서도 강한 구동력을 전해준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밀리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가속력은 타이어에서 완성된다. 엔진 출력과 조화를 이루는 타이어다.

판매가격은 1억2,700만원. 럭셔리 세단이 포진하는 1억 이상의 가격대에 재규어 XF도 자리잡았다. 물론 2.7 디젤 모델을 택하면 7,290만원과 7,990만원에 고를 수 있는 모델도 있다. 재규어는 소수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다. 재규어를 고집하는 소비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재규어의 강한 개성,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디자인, 남성적인 강인한 성능 등을 높이 평가한다. XF가 그런 재규어의 이미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모습의 재규어로 소비자들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모델임은 분명해 보인다.

오종훈의 單刀直入

트렁크 안쪽 위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나사가 박힌 맨 철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차가 럭셔리 세단이 맞다면 그래선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까지 치밀하고 야무지게 마무리해야 하는 게 럭셔리 세단이다. 아무리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에 써야할 재료를 아껴서 얼마만큼의 이득이 있는지 의문이다. 트렁크에 맨 철판을 드러내는 것만 본다면 5,000만원짜리 차도 안된다. 럭셔리 세단임을 포기하던지, 럭셔리 세단답게 마무리를 똑 부러지게 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리어스포일러도 매끄럽지 않다. 붙인 티가 너무 난다.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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