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블로거다. 뉴욕에서 의사로 살면서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엮어 그의 블로그에 올린다. 주제는 다양하다. 직업이 의사인만큼 건강을 큰 테마로 하고, 영어공부, 미국에서 의사되기 등이 그의 주된 글쓰기의 소재다. 자동차도 중요한 소재중 하나다. 그를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다.


고수민. ‘뉴욕에서 의사하기’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현직 의사다.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현대 제네시스가 웃돈받고 팔리는 까닭’이라는 글을 계기로 오토다이어리와 인연을 맺었다. 자동차와 관련한 그의 글은 오토다이어리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뉴욕에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글자를 통한 만남이지만, 따뜻함이 느껴졌다. 세상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그는 “너무 떨립니다.”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질문에 확실한 의견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존대말로 답했지만, 편집과정에서 편의상 존대를 생략했고, 가급적 내용에 지장이 없는 한도 안에서 그의 답글을 줄였음을 밝힌다. 이제 그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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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교에 다닐 때 비교적 먼 거리를 통학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현대 프레스토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몰고 다녔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판단하는 기준은.
“차는 가장 값비싼 소비재다. 돈을 지불했을 때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에게 자동차는 상품이기 때문에 잘 달리고, 돌고, 서는 것 외에도 조용해야 하고, 안락해야 하고, 다루기 쉬워야 하고, 잔고장도 없어야 하고, 자동차 보증수리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하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야 하고, 실용성도 높아야 한다. 결국은 보통의 소비자와 관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현대가 거둘 수 있는 제네시스로 인한 효과는 판매 자체로 인한 수익의 증대와 제네시스로 인한 현대 자동차의 이미지 제고 두 가지로 생각된다. 두 번째 의미에서 제네시스는 이미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에 와서 2005년 이후로 각종 자동차 상업용과 동호회 성격의 사이트를 모니터 하면서 내린 결론은 현대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생각이 상당히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는 제 글 ‘현대 제네시스를 기다리는 미국인들(
http://ko.usmlelibrary.com/entry/hyundai-genesis)에도 이미 일부 소개가 됐다. 이제 미국 자동차 게시판에서 현대차를 고장이 잘나는 싸구려 차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아직 이런 사람이 꽤 된다) 바로 왕따 당한다. 언제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면박을 주는 분위기다. 미국 소비자들의 현대에 대한 인식은 나아질 여지가 많이 있다. 현대차 지지자들은 시장 상황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동차 전문지나 각종 소비자 단체나 조사기관의 데이터를 근거로 현대를 옹호한다.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라든가 각종 안전장비 기본 장착 등 현대의 value for money라는 슬로건이 잘 받아들여지는 결과라고 본다. 따라서 제네시스가 ‘현대의 기술력 뽐내기’에 기여를 하면서 더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판매 면에서 성공을 할 수 있느냐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현대가 세운 제네시스 올해 2만대 판매는 미국의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고유가 에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라는 배지를 그대로 달고 나온 것도 분명히 마이너스요인이다. 고질적인 수준 이하의 딜러문제도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대의 홍보 역량에 따라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아제라와 베라크루즈 런칭처럼 미지근한 마케팅을 한다면 제네시스도 판매 성공을 자신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제네시스는 광고비로만 800억을 쓸 것이라고 하던데 야심 찬 계획임에 틀림없지만 시보레 말리부의 경우 올해 1500억 예산의 광고가 지출된다고 한다. 말리부는 물량이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의 경우 GM 전체적으로 매출이 32%가 감소하는 가운데 말리부는 오히려 판매가 79%가 증가했다. JD 파워 측에 따르면 말리부 소비자들이 이전모델보다 평균 5000불 이상 더 비싼 차 값을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차만 좋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그랜저(미국명 아제라) 지난 달 판매가 겨우 808대다. 제네시스를 한 달에 4000대씩 팔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한국차를 한국에서 볼 때와 미국에서 볼 때 차이가 있다면.
“미국 차 값이 한국보다 훨씬 싸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2000cc급 쏘나타를 봐도 상당히 좋아 보였는데 미국에선 2700cc급 쏘나타를 봐도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기아 오피러스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들 고급 티가 안 나는지 모르겠다. 안쓰럽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국차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다고 보는지.
“품질을 놓고 동급끼리 비교를 한다면 미국 차와는 대등하다고 보고 일본의 도요타나 혼다에 비교하면 90-95% 수준은 된다고 본다. 가격에서 상당한 매리트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 기아차가 구매가치는 높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보기에 80% 수준밖에 안되기 때문에 한국차가 미국 소비자들을 설득하기가 아직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차를 좋아하는가. 승차감 좋은 차? 경제적인 차? 성능 좋은 차? 디자인 좋은 차?
“현실적으로 자동차의 가치는 가격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종합적으로 좋은 차가 좋다. 실제적인 답을 드리면 지금 제가 타는 차는 도요타의 캠리인데 다음 차는 BMW335i나 인피니티 G35 AWD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 다음은 아마 혼다 오딧세이나(미니밴) 현대 제네시스 중에 한 대가 될 것 같다. 제 다음 다음 차를 보면 전혀 이질적인 차 두 대를 놓고 비교를 하다니 참 이상한 취향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현실적인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선택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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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어떤 차를 탔었는지, 간단한 평과 함께…
“첫 차가 대학 1학년 때부터 몇 년을 타고 다닌 현대 프레스토였는데 거의 스포츠카 타는 기분으로 탔다. 매일 택시들과 배틀을 벌였다. 당시의 기준으로도 그다지 좋은 차는 아니었지만 저로서는 충분히 과분한 차였기 때문에 좋은 느낌이 많다. 두 번째 차가 그 후로 13년을 저와 함께 한 대우 르망이다. 가장 추억이 많고 애틋한 감정이 있는 잊지 못할 차다. 미국에 오느라 동생에게 인계했는데 얼마 전에 문제가 많아져서 폐차됐다. 가슴이 아팠다. 좋은 감정이 있으면 단점들이 다 묻히지 않는가. 르망은 저에게 그런 느낌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시끄럽고 조작도 불편하고 기계적 완성도도 떨어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가장 좋았고 지금도 그리운 차다. 최근 미국 오기 전까지는 뉴 EF 쏘나타를 탔다. 사실 르망과 비교하면 꿈의 궁전이다. 조용하고 안락하고 넓고. 힘도 더 좋았다. 하지만 르망과 비교해서도 주행 중 하체에서 올라오는 소음과 고속에서의 엔진음이 작지 않았고 바디 롤링과 언더 스티어도 심해서 주행 시 안정성도 그다지 칭찬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연비가 좋지 않다는 것도 지적할 수 밖에 없고 자동 변속기도 아이들링시 진동을 그대로 전달해줘서 나름대로 중산층을 위한 차이지만 국산 차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뉴 EF 쏘나타를 괜찮은 차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미국에 와서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의 이 차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 인색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NF 쏘나타 이후로는 평가가 많이 정상화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타는 도요타의 캠리 V6 XLE다. 한국에서 타본 렉서스 ES300에 대한 좋은 느낌에 렉서스 배지만 없다는 차를 샀다.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최소한 마쯔다나 스바루 하다못해 폭스바겐 제타라도 살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대만 사야할 때에는 제 취향보다는 가족의 취향(정확히는 아내의 취향)과 실용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장점은 쏘나타보다 조금 더 조용하다는 것과 아이들링시 진동이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뉴 EF 쏘나타 GVS에도 있었던 레인센싱 와이퍼와 같은 자잘한 몇 가지 옵션이 없다는데 약간 실망했다. 안락한 소파 같은 캠리로 타협하는 대신 약간의 보상심리로 V6를 선택했는데 힘이 트랜스미션으로 다 새버리는지(대단한 파워도 아니지만) 2000cc급 국산 중형차에 비교해서 특별히 나은 느낌은 아니었다. 작년 말 한때 바람이 들어서 마즈다 CX-7을 사기 위해 딜러쉽을 찾아 다니며 견적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제 캠리를 도둑맞았다가 찾는 바람에 생각을 고쳐먹고 그냥 오래 타려고 한다. 잃어버렸다 찾으니 정이 두 배가 됐다.”


-의사로 지내며 블로그를 꾸미기가 시간이 빠듯할 텐데, 자동차 칼럼까지 쓰기가 어렵지 않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하나씩 뭔가 쓰고 싶다. 일단 자동차 관련 글은 한 달에 하나 정도 써 왔는데 요즘은 최소 두 개 이상 쓰는 것이 목표다. 자동차 이야기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내 글의 질이 높지 않다고 불평하실까 봐 걱정이긴 하지만 아직은 재미로 많이들 보아주시니 행복하다.”


-자동차와 의학중 어느 분야가 편한가.
“의학칼럼은 그냥 아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 쓰면 되니까 많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내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팩트를 재점검하는 의미에서 자료를 찾아서 확인하면 되는 정도다. 자동차 관련 글은 평소에 미국 신문, 자동차 잡지와 웹사이트 등에서 평소 자료를 모으고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쓸 만큼 쌓이면 쓰기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아서 비교적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지막에 한 번 더 자료를 찾아서 확인하지 않으면 오류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더 힘들다.”


-네티즌의 항의를 받거나 불쾌한 경험은 없었는지.
“항의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제가 나서지 않아서 다른 네티즌들이 나서서 균형을 잡아준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댓글이야말로 블로그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좋은 장치인 것 같다. 내가 편향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반대되는 입장의 글이 어김없이 올라오니까 읽는 분들이 둘 다 보고 판단하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신공격성(저에 대한 것이든 댓글을 단 다른 독자에 대한 것이든) 글이나 광고성, 스팸성 글은 삭제가 된다. 하지만 저에 대한 공격은 되도록이면 삭제를 안 하는 편이다. 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된다.”
-꿈이 있다면.
“블로거로서의 꿈은 구독자가 한 만 명쯤 되었으면 좋겠다. 새 글이 없는 날도 방문자가 최소 2천에서 3천명쯤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구독자가 2000명 정도고 포스트 없는 날 방문자가 700명 정도니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다. 의사로서는 몇 년 후 개업을 할 생각인데 무사히 잘 개원해서 블로그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좌우명? 혹은 스스로의 철학 이 있다면.
“일본 사람들이 자식을 교육할 때 항상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나도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간다면 남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사로서 나를 환자들이 필요로 해주고 블로거로서 독자들이 제 글을 필요로 해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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