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차와 함께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김찬연



그를 만난 건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에서다. 사통팔달 길이 뚫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굽이굽이 돌아서 가야하는 정선, 가리왕산의 깊은 산 비탈에서였다.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민박집 뒷마당에 그의 차가 서 있었다. 그의 차는 멀리서도한 눈에 찾을 수 있다. 95년식 기아 콤비. 알록달록하게 그림을 그려 넣었다.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이유다.조금 장난스럽고 유치한듯한 그림, 하지만 그 안에는 결코 장난스럽거나 유치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


김찬연.
그는 목수다. 나무를 깎고 다듬어 그럴듯한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집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엔 틈틈이 목각 작업에 열중이다. 새로 배우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나무를 다루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그가 목수인 이유는 그 일로 경제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목수일로 돈을 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일상의 대부분을 목수와는 상관없이 지낸다. 어슬렁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는가하면 ‘여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몸집이송아지만큼 큰 개와 장난을 치며 소일한다. 저녁엔 악기를 손에 들고 음악에 심취하고, 조각칼을 들고 통나무를 마주한다. 매일 하는 일은 이처럼크게 다를 게 없지만 배경은 수시로 바뀐다.지리산 산골 마을을 배회하다가, 남해안 바닷가를 거니는가하면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식이다.




그는 세상을 떠도는 방랑가다. 여행가가 아닌 이유는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경하다돌아갈 집이 있는 여행가와 달리 방랑가는 지금 그가 있는 곳이 집이다. 돌아갈 곳도, 그럴 필요도 없는방랑자다.한 곳에 오래 머무는 법도 없다. 일주일, 20일, 길어야 한달 머물다가 떠난다. 아직 그가 보지 못한 세상이 너무 많아서다.


그의 집은 자동차다. 세상을 떠돌기에는 자동차만큼 좋은 게 없다. 그가 차를 집으로 만든 이유다. 기아자동차가 95년에 만든 콤비 버스 실내를 개조해 집으로 만들었다. 멋진 오토캠핑카를 생각하면 안된다. 목수인 그가 스스로 작업해 만든 실내는 효율적이거나 편할지는 모르지만 보기에 멋있지는 않다. 지리산 아래에 집을 한 채 짓고 남은 나무들로 차의 실내를 만들었다고 했다.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그의 좁은 차 안에는 필요한 게 다 있었다. 작은 김치 냉장고가 있고, 컴퓨터 모니터는 흔들리지 않도록 고무줄로 잘 동여맸다. 차 뒤편으로는 좁은 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선물받았다는 장구가 놓여져 있었다. 간단한 주방시설이 있고 작업대 위에는 나무 덩어리가 있다. 목각을 위한 재료다.

실내를 둘러가며 많은 사진들이 있다. 세상을 떠돌며 찍은 사진들. 그 무대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아시아 각국는 물론 오세아니아, 유럽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곳들이 사진 안에 담겨져 있다. 배낭하나 둘러메고 세계를 떠돈 흔적이다. 그때에는 차도 없었다. 구름처럼 걸어서 세상을 떠돌았다.



“왜 그런 삶을 사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마주할 뿐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냥 여행을 하고 싶어” 배낭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고 했다. 2003년이었다. 그 길이 여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함양에서 태어나 줄곧 부산에서 커온 그에게 바깥 세상은 너무나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 곳들이었다. 세상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보고 만났다. 한 달에 30만원 정도면 충분한 시절이었다. 바에서의 허드렛일, 청소, 집짓는 목수일, 간단한 장사, 세차 등등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오랫동안 구경하며 떠돌 수 있었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버스를 장만해 타고 다닌다. 응급차로 쓰이던 6인승 특수차를 구해 개조한 것. 손수 꾸민 실내는 훌륭한 보금자리가 됐다. 그의 차는 과속을 할 수 없다. 차의 무게도 있고해서 고속도로에서 가장 빨리 달려야 시속 70km다. 보통 50km/h 정도로 다닌다. 세상을 보기에 가장 적당한 속도다.


레게 머리로 땋아내린, 그래서 썩 단정해 보이지않는 모습. 얼핏 보면 나이를 어림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의 피부를 보면 아직 30이 안된 나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28. 인도네시아에서 산 옷을 입고 서아프리카의 타악기 젬베를 치며 차와 함께 유유자적하는그의 모습에서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만만치 않은 연륜을 느낄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봉화나 영양쯤에 반 정착을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반정착? 아, 어쩌면 그도 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반정착’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정착으로 가는 중간다리일까, 아니면 또 한 여자가 정착을 포기하고 방랑자도 떠도는 시험대가 될까. 봉화나 영양, 경상북도의 심산유곡에서 펼쳐질 그의 인생 2막이 궁금해 진다.


아, 혹시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김길수의 난’ 편을 본 사람은 이 사내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 가족에게 차를 타고 떠도는 가족여행의 모티브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이 사내다. 물론 프로그램 중간에 잠깐 나오기도 했다.

지금 자리잡은 정선 가리왕산에 들어온 지 20여일. 이제 떠날 때가 됐다.펑크나버린 앞 타이어를 고치는대로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떠날 태세다. 산골의 해는일찍 저문다. 산 너머로 구름이 바쁘게 흘러간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