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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플래그십, 레전드 ‘신화가 아닌 전설’

혼다 레전드를 만났다. 혼다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어코드 3.5와 CR-V를 앞세워 수입차 시장을 장악한 혼다의 최고급 모델이다. 북미 시장에서 어큐라 RL로 팔리는 바로 그 차다. 혼다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이 전설처럼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이 차가 국내 출시한 것은 지난 6월 말. 세계 첫 론칭 무대로 한국을 택했다. 혼다의 전설, 레전드를 타고 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를 달렸다.

새 레전드는 커졌다. 크기와 엔진 배기량 모두 커졌다. 우선 크기. 길이x너비x높이가 4,985×1,850×1,455mm다. 길이가 55mm, 너비가 5mm각각 늘었다. 커진 크기는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 플러스 요인이다. 실속 보다 크기에 집착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나쁠 게 없다. 특히 5m에 육박하는 길이는 벤츠 E 클래스, BMW 5시리즈보다도 길다. 기존 레전드로 작지 않은 덩치였지만 더 커진 모습이 당당하다.배기량도 3.5리터에서 3.7리터로 업그레이드 했다. 최고출력은 307마력, 최대토크는 37.7kg.m의 힘을 낸다.

커지고 차분한 스타일

은색의 보디컬러, 투명한 리어 램프 등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리어콤비네이션 램프에선 언듯 벤츠 S 클래스의 모습이 보인다. 워셔액 분출구는 프런트 윈드실드와 마주하는 보닛 아래쪽으로 잘 숨겼다. 공기 저항에 노출될 일은 없겠다. 프런트 그릴은 차분하면서도 강한 모습. 제일 아래 선이 V자 형상으로 꺾이며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스트럿바가 버티고 있는 엔진룸에는 V6엔진이 가로 배치돼 있다. 사륜구동이면 세로배치가 일반적이지만 레전드는 공간 효율이 좋은 가로 배치를 택했다. 엔진은 앞 차축보다 조금 앞에 자리했다.

3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뜬다. 네 바퀴의 구동 상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실시간 연비 상황도 마찬가지. 센터 페시아 상단에는 모니터가 있다. 흑백 기조에 파스텔 톤 컬러의 모니터다. 보기 편하다.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공조장치들의 상태를 보여준다. 센터 페시아는 은색 컬러를 기조로 하고 있다. 죠그셔틀 스위치와 오디오, 공조 스위치들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면 좋겠다. 스티어링 휠은 손 안에 쏙 들어온다. 손이 작은 여성이라도 부담 없이 잡을 수 있겠다.

귀에 감기는 엔진 사운드

시동을 걸고 도로 위로 올라섰다. 소리가 좋다. 저속에선 조용했고 고속에선 엔진 사운드가 귀와 심장을 적당히 자극한다. 시속 100km 이전의 평상 주행 속도에서는 이중창으로 닫힌 아파트 실내에 앉아있는 듯 조용했다. 속도를 높이면서 특유의 엔진 소리가 도드라지는데 특히 rpm 4000부근에서 엔진 사운드는 가장 듣기 좋다. 파워풀한, 그러나 째지지 않는 소리다. 귀에 착착 감긴다. 혼다는 소리를 소리로 잡는 ANC 시스템을 이 차에 적용했다. 오디와 연동해 듣기 좋은 주파수의 소리는 증폭하고 듣기 싫은 소음은 이를 상쇄시키는 소리를 발생시켜 정리하는 것. 덕택에 실내에서 귀는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다. 듀얼 배기 시스템도 한 몫한다. 촉매장치 바로 뒤에서 둘로 나뉘는 풀 듀얼 배기 시스템이다. 가변 유량 사일렌서도 있다. 저회전 영역과 고회전 영역에서 배기가스의 흐름을 달리해 저속에서는 소음을 억제하고, 고회전에서는 스포티한 사운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5단 자동변속기는 패들시프트를 적용했다. 그런데 궁합이 잘 안 맞는다. 패들시프트를 적용해 수동변속 기능을 더했는데 정작 변속레버는 수동변속 기능이 안 된다. 얌전히 일자형으로 배치된 변속레버다. 팁 트로닉 레버가 아닌 일자형 레버. 패들 시프트를 적용했다면 변속레버도 팁트로닉을 배치해야 제대로 된 구성이라 하겠다. 아니면 변속레버에 1, 2, 3 단 모드라도 따로 있으면 어땠을까. 구식 냄새가 날지 모르겠지만 변속 레버를 통해 수동변속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패들시프트와 변속레버의 부조화

패들 시프트는 조금 작은 듯해서 핸들을 돌리면서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 핸들과 함께 돌아가는데 팁트로닉 버튼이 작기 때문이다. 손이 작은 동양인을 위해서라면 팁트로닉 버튼을 조금 키웠으면 좋겠다.

차도 사람도 가장 편안하게 달리는 속도인 D모드, 시속 80km에서 rpm은 1800으로 차분하다. 같은 상황에서 속도를 100km로 올리면 rpm도 2,000으로 따라 오른다. 변속기를 스포츠모드인 S로 옮기면 rpm은 500~800rpm가량 오른다.

rpm은 6500 이후부터 레드존에 접어든다. 하지만 엔진 공회전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5,000rpm 이상 오르지 않는다. 적절하게 제어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레전드에는 오르간식 가속페달이 적용됐다. 가속페달의 지지점이 바닥에 있어 페달이 좀 더 안정적이다. 킥다운 버튼은 없다. 그냥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누르면 킥다운이 걸린다. 별도의 걸림 장치를 없앴다. 킥다운을 걸 때 발끝으로 전해지는 킥다운의 짜릿함이 없어 아쉽지만, 그게 차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레전드에서 가장 중요한 체크 포인트는 바로 SH-AWD다. 슈퍼 핸들링 올 휠 드라이브의 약자. 혼다의 사륜구동장치다. 특징은 뒷바퀴의 좌우 구동력까지도 조절한다는 것. 상황에 따라 네 바퀴에 각각 다른 크기의 구동력을 전해주는 시스템이다. 일반 주행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사륜구동 상태로 즉시 변환된다. 속도를 높여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뒷바퀴굴림 상태가 된다. 코너로 진입하면 좌우 바퀴의 구동력 변화가 일어난다. 레전드의 구동장치는 이처럼 도로 상황에 따라 네 바퀴에 전해지는 구동력이 그때그때 달라진다.

가속력은 충분하고 차의 반응은 확실했다. 초반 가속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6,300과 5,000rpm에서 터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고회전 영역에 맞춰진 엔진 세팅이다. 시속 100km를 넘길 때보다 150km를 넘길 때가 더 짜릿하고 파워풀하다. 재미있다.

킥다운을 하면 레드존에 이르면서 자동변속이 일어나는 게 아쉬운 사람들이 있겠다. 패들 시프트로 시프트 다운을 하고 rpm이 레드존 입구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는 맛을 이 차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상시사륜구동의 안정감, 이륜구동 수준의 연비

상시사륜구동장치를 적용한 만큼 주행안정성은 돋보인다. 여간해서는 차가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특히 레전드의 코너에서 안정감은 칭찬할만했다. 245/45R18 미쉐린타이어가 간혹 엄살처럼 비명을 지르기는 일만 빼면 차의 안정감은 대체로 좋았다. 저속에서는 물론, 고속, 코너 등에서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보였다.

레전드는 연비면에서 불리한 풀타임 사륜구동차이면서도 비슷한 배기량을 가진 동급차들에 비해 연비가 괜찮은 편이다. 레전드의 연비는 8.6km/l. 후륜구동인 크라이슬러 300C 3.5의 연비가 8.7km/l로 비슷한 수준이다. 3.6리터 엔진을 얹은 캐딜락 STS는 8.8km/l를 기록한다. 레전드와 같은 풀타임 사륜구동인 벤츠 E350 4매틱은 7.8km/l다. 인피니티의 G37 쿠페가 9.0km/l로 그중 나은 편이다. 동급 사륜구동세단보다는 우수하고 비슷한 배기량의 이륜구동 세단정도의 연비를 보이는 셈이다. 경량 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줄였고, 4, 5단을 오버드라이브 상태로 세팅한 변속기 등의 조합에 힘입어 풀타임사륜구동이 연비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배기량을 무시하고 보면 리터당 8.6km를 달린다는 절대 연비를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레전드의 1단 변속비가 2.52인 점도 특이하다. 1단 변속비의 경우 3.5 전후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4.0을 넘기는 경우도 있는데 레전드는 오히려 기어비를 2.52대1로 좁혔다. 강한 구동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차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조금 더 비중을 뒀다고 볼 수 있다.

레전드는 화려하지 않다. 혼다의 플래그십모델이라고는 하지만 유러피언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하면 고급스럽지도 않다. 소박하다. 필요한 장치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실내에서 받는 느낌은 럭셔리와는 거리가 있다. 기능적이고 대중적이다. 혼다의 컬러다. 레전드라는 이름도 그렇다. 신화가 아닌 ‘전설’이다. 화려한 신의 영역이 아닌 소탈한 인간의 영역을 택한 것이다.

어쩌면 화려하거나 호화로움과는 거리를 두는 그런 면이 혼다의 매력인지 모른다. 국산차를 타는 많은 사람들이 혼다의 그런 면에 끌려 혼다를 국내 제일의 수입차 브랜드로 만들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진짜 수입차 처럼 보이는 유러피언 럭셔리 세단과 달리 혼다는 국산차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친근함이 있다는 말이다.

판매가격은 6,780만원. BMW 328i 스포츠(6,660만원), BMW 528i(6,750만원), 크라이슬러 300C 5.7헤미(6,980만원), 푸조 쿠페 407(6,600만원), E220CDI(6,490만원), 렉서스 ES350(6,520만원) 등이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모델들이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면 크라이슬러 300C 3.5(5,780만원), 캐딜락STS 3.6(6290만원) 벤츠 E350(1억 1,900만원) E350 4매틱(1억 5,900만원), 인피니티의 G37 쿠페(5,980만원) 등이다.

오종훈의 單刀直入치밀하게 짜여진 보디에 의외로 허술함이 보인다. 트렁크 리드와 일체화 시킨 리어스포일러는 마무리가 거칠다. 보디와의 일체감이 떨어지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실내에서 도어를 닫았을 때 도어와 대시보드가 접하는 부분에 공간이 너무 넓게 떨어진 점도 의아스럽다. 왜 그런 넓은 틈이 필요했을까. 모르고 그랬을 리는 없고 알고도 그랬다면 의도가 궁금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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