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에도 수동변속기는 부활할 조짐이 없다. 소비자와 자동차 메이커 모두 수동변속기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수동변속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수동변속기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수동변속기를 찾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연비가 나쁘다.
수동변속기는 연비가 우수하다. 동급 기준으로 자동변속기보다 10~15% 정도 연료를 적게 소비한다. 그만큼 기름을 아낄 수 있는 것. 쏘나타 2.0 VVT의 연비를 살펴보면 자동변속기는 11.5km/l, 수동변속기는 12.8km/l다. 수동변속기가 1리터에 1.3km를 더 가는 것이다. 10% 이상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택하려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차종에서 수동변속기는 아랫급 모델에서만 고를 수 있다. 고급 버전을 택하려면 수동변속기는 포기해야 한다.
메이커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수동변속기 수요가 2%만 돼도 어떻게 해보겠다. 하지만 수동변속기를 찾는 소비자가 1% 안팎이다. 이 정도 수요로는 수동변속기를 따로 적용하기 힘들다”
수동 변속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얘기는 또 다르다. “고급 모델에서도 수동변속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연비 때문만이 아니라 운전하는 손맛을 느끼려면 수동변속기가 제격인데 이를 고를 수 없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서로 핑계를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메이커는 소비자의 니즈가 없다며 수동변속기를 피하고, 소비자는 메이커에서 안만드니 어쩔 수 없다며 수동변속기를 포기하는.
메이커와 소비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다. 메이커에서는 소비자들이 조금 덜 찾더라도 수동 변속기를 최고급 버전에까지 확대 적용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메이커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쫓아가는 게 맞지만 때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메이커의 역할이다. 시장 수요를 적절히 쫓아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 수요를 유도해야 한다.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조금 불편해도 수동변속기를 선택하면 경제적 이익과 함께 즐거운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메이커에 수동변속기를 확대적용 해줄 것을 적극 요청해야 한다.
적어도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을 넘나드는 시점이라면 수동변속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자동차 메이커와 사회, 소비자 모두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