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AutoDiary

상상의 한계를 허무는 레이싱 영화 스피드 레이서



‘스피드 레이서’ – 제목으로 보면 분명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 영화인데 실제로 보면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을 영화사에서는 ‘카푸’라고 부른다. 즉 자동차(카)와 쿵푸의 합성어라는 것이다. 이쯤 말하면 눈치빠른 사람들은 절반의 내용을 알게 된다.


박진감 넘치는 전차 경주 장면이 나오던 영화 벤허에서 보면 주인공을 탈락시키기 위해 배신자 친구가 편법을 쓴다. 마차 바퀴에 톱니를 달아 상대편 마차 바퀴를 못쓰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스피드 레이서에서는 그러한 장면이 첨단 무기로 발전되어 더 다양해지고 있다. 레이서들은 드라이빙 테크닉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데 미래의 레이서들은 그 와중에 각종 첨단 장비로 상대편을 공격하고 방어하기도 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첨단 무기는 007에서 늘 봐오던 거라 그리 새롭진 않지만 내용이 음속을 넘나드는 경주 상황이다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 영화는 여러 모로 헷갈리는 내용이 많다. 우선 실제 장면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썼다. 내용은 어린이용인데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도 있다. 음모와 이를 둘러싼 갈등을 풀어가는 구조, 형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과의 마찰, 필요에 의해 합치고 배신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단순하게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영화 보는 도중 바로 이러한 장면에서 아이들은 산만해진다).



‘스피드 레이서’는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최초의 일본 만화다. 원작은 본래 일본 만화 계의 선구자였던 ‘요시다 타츠오’에 의해 탄생된 ‘파일럿 에이스’라는 만화책 시리즈다. 이 만화는 일본 타츠노코 제작사가 1967년 52부 시리즈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마하 고고고’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달려라 번개호’로 방영됐다.

단 6개월 만에 일본 전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곧 바로 ‘스피드 레이서’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소개됐다. 이 애니메이션은 즉시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미국의 청소년 시청자들은 ‘마하 고고고’의 놀라운 상상력에 사로잡혔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전세계 공통적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스토리 전개, 가족의 가치, 10대 주인공들의 로맨스와 엉뚱한 유머에 빠져들었다. 1990년에 재 상영된 후 다시 한번 인기를 누리고 두 개의 신판이 나와 2000년 초반까지 계속 방송되었다.




그리고 기나긴 준비 끝에 2008년, 워쇼스키 형제는 시각효과 기술이 연출하는 장관과 공중을 가로지르는 액션 스턴트, 첨단 촬영 기술과 컴퓨터 이미징 기술을 총동원해 ‘스피드 레이서’를 실사 영화로 스크린에 옮기게 된다.


빠른 속도의 액션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각 배우의 클로즈 업과 제스처를 제대로 잡아낼 카메라 앵글을 확보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레이싱 카 외부의 환경을 디지털 작업으로 창조한 것과 달리, 레이싱 카 콕핏(cockpit: 조종석) 내부는 실물 사이즈의 모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온갖 핸들과 페달, 장비 버튼 등으로 운전석 뒷면까지 빼곡히 채운 콕핏 모형은 유압식 수평 유지 장치(gimbal)를 탑재하여 가상 현실 드라이빙 프로그램의 지시에 따라 실제 레이싱 카와 같은 격렬한 차체 움직임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세계 흥행을 고려한 흔적은 등장인물에서도 엿보인다. 일본 원작에 미국 주도의 영화이면서 출연진을 각 나라별로 안배하는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있는 비(정지훈)가 주요한 조역 태조 토코칸으로 등장한다. 막판엔 대사는 없지만 GOD의 박준형도 화면 가득히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온다.


이처럼 다국적 출연진, 자동차와 쿵푸의 만남, 실제와 허구의 중간계,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접목 등등 이 영화는 인간의 상상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려고 애쓴 흔적이 다분하다. 그래서 단순히 레이싱 영화로 이해하고 보기엔 낯설지만 그냥 원작 만화를 상상하고 보면 매우 스피드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이다. 최첨단 디지털이 상상의 한계를 허물고 달리는 ‘스피드 디지털’이라고나 할까…


이상역 dd@autodiary.kr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