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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대 김필수 교수 ‘다재다능한 학계의 마당발’

대림대 자동차과 김필수 교수는 업계 마당발이다. 학계, 정비 현장은 물론 중고차 시장, 심지어 이륜차 업계까지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맡고 있는 직책도 적지 않다. ‘자동차문화포럼연합’ 위원장,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 과학기술부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정책연구, 국토해양부의 관련 연구 책임자로도 불려다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동차 컬럼을 쓰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하루 한 편 꼴로 차 관련 글을 쓰고 기고한다.
10여개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 방송인이기도 하고, 대기업과 학교로 특강을 다니는 강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만 활동하기엔 좁았나 보다. 급기야 중국정부의 자동차 인력양성과 관련한 자문역할까지 최근에 맡았다고 한다.
그는 발명가이기도 하다. 2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곧 상품화되어 시판을 앞두고 있다. ‘휠 내비게이터’라는 상품이다. 각 바퀴에 센서를 달아 정렬상태를 계기판으로 보여주는 개념이다. 운전석에서 바로 바퀴의 정렬 상태를 체크해 정비가 필요할 때를 쉽게 알 수 있다.
마당발, 다재다능,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해 보일만큼 하는 일이 많고, 폭이 넓다. 한가지 공통점은 모든 일의 공통 분모가 ‘자동차’라는 점이다. 자동차와 관련한 일이라면 그에게 자문을 구하면 십중팔구는 답을 구하거나, 답을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중 가장 애착을 갖고 하는 일이 뭐냐고 물었다. 열 자식 중 어느 자식이 예쁘냐는 어리석은 질문임을 뻔히 알면서 던지는 물음이다. “중고차, 이륜차, 튜닝” 세 단어가 답으로 되돌아 왔다. 워낙 많은 일에 관여하고 있어 딱 하나를 집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답에 이어지는 설명이다. “세 분야는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 많이 뒤떨어진 분야다. 부작용도 많아 선진화가 안된 분야들이다. 이런 부분을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뒤떨어진 분야를 발전시키고 싶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데에는 많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두가지 질문이면 십여분간 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교수, 방송인이어서 쉽게 풀어 이해를 돕는 말이 쉼 없이 이어진다. “나는 바람잡이다.” 다양한 활동으로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어내는 게 그의 몫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본업은 역시 교수, 교육자다. 그의 말은 이렇다. “그런 낙후된 분야에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문가 양성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지식을 쌓은 전문가들을 키워내 관련 분야에서 활약하도록 지원을 하면 그들이 각 분야에서의 발전을 주도해 나갈 것이란 말이다. ‘10만 양병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그가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갖는 표하는 것은 일 욕심보다 제자 욕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그의 말마따나 아직은 발전이 덜한 분야에 뛰어들어 업계를 끌고 나갈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김 교수가 키워내는 셈이다.
후학 양성과 관련해 그는 큰 애착을 보인다. “차를 좋아하면,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적성과 특기가 맞으면 만족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교육자로 그가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점은 “인성”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성공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핸드폰 문자로 사표를 던지는” 사람을 만들어선 안돼기에 ‘인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동국대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그는 모교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자동차가 그냥 좋았다는 대학시절에 그는 정비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포니를 분해조립하고 엔진까지 뜯어볼 수준으로 정비를 익혔다. 그때 맺어진 자동차와의 인연이 결국 ‘평생의 업’이 된 것. 자동차 문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70년대 후반 자동차를 배운 그가 이제 자동차 문화를 뿌리 내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숨 쉬는 것 조차도 자동차와 관련돼 있을 것 같은 그의 삶에 의외로 자동차와 전혀 상관 없는 부분도 있다. ‘올바른 젓가락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대표를 맡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였다. 의외스러움, 장난기까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장난 ‘끼’가 느껴진다.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 써야 그 많을 일을 다 할 수 있을 듯 한데 틈 날때마다 영화관을 찾는단다. 개봉관을 찾아 심야, 조조 가리지 않고 본다는 것. 여행도 좋아해 독일 아우토반, 지중해 등 많은 곳을 다녔다.
그는 방송 스케줄을 주로 아침에 잡는다. “그래야 전날 저녁 술을 안먹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억지로 스케줄을 만들어 술을 절제해야할 만큼 술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다음날 방송 있다고 술을 안마실리 만무하다. “그래도 술 마시게 돼더라”고 웃음을 짓는다.


올해 나이 49세. 이제 서서히 인생 후반기로 접어드는 나이다. “60세가 넘으면 해외 활동에 나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국제전문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머리 속을 맴돈 생각은 부러움 이었다. 그 많은 분야의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해낼 수 있을까. 그 끊임없이 솟구치는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열정이 부럽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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