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숫자에는 강하지만 기록에는 약하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용광로처럼 끓지만 늘 보던 것에는 무관심하다 못해 찬바람이 불 정도로 싸늘하다.
4월 20일 그 싸늘함이 새로운 기세를 눌렀다. 그것이 우리 모터스포츠의 비애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삭막함이 이런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이다.
4월 20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CJ 슈퍼레이스 제1전 GT 슈퍼2000 통합전에서 파란색 라세티 경주차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용인에 아스팔트 포장 경기장이 생긴 이래 대우 마크를 단 경주차가 최고 클래스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폴투피니시로 말이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6개월만에 우승을 차지한 이재우에게 쏠렸다. ‘지엠대우의 사상 첫 최고 클래스 통합 우승’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언론은 찾기 힘들었다.사람들에겐 경기장도 경주차도 카레이서도 그저 늘 있는 소품에 불과한 현실을 그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포장에서 경기를 하던 시절엔 기아자동차가 주인공이었다. 작지만 강한 프라이드는 경기장의 꽃이었다. 용인에 포장 경기장이 생긴 이후론 현대자동차의 독무대였다. 스쿠프, 티뷰론, 터뷸런스, 투스카니로 이어진 경주차 계보는 거의 전설이었다.
그 전설이 깨진 것은 렉서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렉서스의 등장은 참 대단하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경기를 주최하던 KMRC가 누구인가? 바로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고 창단된 인디고팀을 기반으로 한 친현대 회사 아니던가? 당연히 투스카니가 우승을 해야 하는 절묘한 규정(?)으로 인해 수입차의 진출이 쉽지않던 시절,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면서 등장한 렉서스에 의해 그 거대한 둑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KMRC가 선수들로부터 외면당해 대회 주최권마저 빼앗기면서 새롭게 등장한 KGTC가 CJ라는 막강 화력을 등에 업고 등장하면서 메인 경기를 스톡카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 상태라면 당분간 현대자동차가 국내 모터스포츠 판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않은 상황이다.
드디어 대망의 2008년 개막전. 준비부족으로 스톡카 레이스가 2전으로 밀린 틈을 타 몇 대 안되거니와 이제 힘이 빠진 GT 경주차를 밀어내고 GM대우의 라세티(배기량 2천cc를 탑재한 개조차)가 통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미 라세티 경주차는 GM 브랜드로 유럽 WTCC(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던 터라 어느 정도 기대가 되긴 했다. 월드카 브랜드인 GM의 조직력과 기술력이 합쳐지지 않았더라며 절대 불가능했을 결과다. 과거 대우자동차 시절 모터스포츠는 꿈도 꾸지 않았던 그 시절이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란 이야기다.
지난해스톡카에 참가해달라는 주최측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한 채 슈퍼2000 클래스에 남았던 GM대우가 스톡카가 등장하기 전 소원을 성취한 셈이니 어쨌든 성공했다고 축하는 해줘야 할 것이다.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말이다.
이상역 dd@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