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쌍용의 도발, 체어맨 W

쌍용자동차 플래그십카가 바뀌었다. 체어맨W가 출시된 것이다.이 차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다. 1억원짜리 국산차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를 만들어낸 현대자동차가 뻘쭘하게 됐다. 쌍용은 체어맨 W와 제네시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한수 위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배기량, 출력, 가격 등등의 숫자만으로도 우열은 금방 갈린다.

체어맨 W 5000을 시승차로 받았다. 리무진을 제외하고 최고급 모델이다. 주요 옵션이 싹 빠진 제네시스 330을 시승차로 내놓는 현대차와 비교된다. 쌍용차 지하 주차장에는 체어맨 W 5000 시승차가 대충 살펴도 20~30대가 깔려 있었다.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업체의 여유, 혹은 오만과 어떻게든 점유율을 늘려야 하는 추격자의 입장이 대비되는 장면이다. 고객을 대하는 자세도 이처럼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절제된 단순함이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직선 위주의 헤드렘프, 평평한 숄더라인, 선은 물론 면 처리도 과장됨이 없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차의 고급스러움을 더 높여준다. 요란하거나 과장됨 없는 차분함이 돋보인다. 자신감은 단순함을, 열등감은 과장을 좋아한다. W의 디자인에서 쌍용의 강한 자신감을 읽는다.

19인치 크롬휠은 강한 포스를 뿜어낸다. 휠 하우스를 가득채우는 타이어가 만만치 않은 성능을 암시해 준다.

차는 다른 승용차들보다 조금 높다. 다른 승용차를 살짝 내려보듯이 운전하게 된다. 실내 공간 여유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최고급 럭셔리 세단의 의도적인 설계이기도 하다. 롤스로이스의 차 높이가 조금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차분한 인테리어는 탑승자를 편안하게 한다. 쇼퍼드리븐 카 즉, 운전자를 고용하고 오너는 뒷좌석에 앉아가는 차다. 당연히 뒷좌석 공간이 중요하다. 6대4로 나뉘는 뒷좌석은 전동 슬라이딩 방식으로 누일 수 있다. 뒤에서 오디오 DVD 등을 직접 조절할 수 있고 분위기 있는 무드 등도 지붕에 있다. 뒷좌석 우측 시트에는 안마 기능이 내장돼 있고 시트백 테이블도 있다. 안마기능도 있다. 렉서스 LS 460에만 안마기능이 있었다. 안마기능이 단순히 시트 떨림 기능만 있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피곤한 몸을 위해서는 그 정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 놀랐다. 스티어링 휠이 기대 이상으로 무척 가벼웠기 때문이다. 덩치 큰 차를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로웠다. 물론 속도를 높이면서 핸들의 반응은 점차 무거워졌다.

이 차에는 적용가능한 모든 기술이 적용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차 높이를 스스로 조절한다. 트렁크를 열면 높이를 낮추고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고 리모컨으로 도어를 잠그면 다시 낮아진다. 똑똑한 하인을 둔 것 같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면 차가 스스로 정해진 속도로 달리다가 앞차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속도를 줄인다. 참 편하다. 운전자는 핸들만 놓지 않고 있으면 된다. 가속도 감속도 차가 알아서 한다. 무슨 재미로 운전을 할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의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급정거를 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다. ESP 시스템은 차를 종합적으로 제어해주는 기술이다.주행상황에 맞춰 구동력을 조절하고 때로 브레이크를 작동시키거나 엔진 출력을 조절시켜 차의 거동을 안정시킨다. 시속 80km 전후의 평상 주행속도에서라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차의 자세를 제어한다.

엔진은 높은 회전수에서 최대출력과 토크가 나오게 세팅됐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차의 성격과는 조금 맞지 않아 보인다. 힘은 충분하다. 306마력과 40kg.m의 토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차체를 끌고 간다. 스티어링 반응과 가속 반응은 약간의 시차가 있다. 승차감을 위한 의도적인 특성이다. 서스펜션의 딱딱함이 조금 덜 한 것 역시 그렇다. 이 차는 운전자의 운전하는 즐거움보다는 뒷좌석에 앉은 오너의 편안함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차이니까.

7단 자동변속기는 이 차의 또 다른 자랑이다. 벤츠가 만들었다는 바로 그 변속기다. 후진2단에 전진 7단이다. 최적의 변속 기어를 택할 수 있어 효율이 높아졌다는 실질적인 장점도 있지만 단순히 ‘7단’이라는 표현 자체의 힘이 있다. 아직도 4단 자동변속기가 많이 사용되는데 7단 변속기를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수동 모드를 택했을 때에도 자동변속이 이뤄지는 것은 아쉽지만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성능보다 승차감이 중요한 이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끝까지 변속을 거부하며 레드존을 넘나드는 한계주행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승차감은 최고수준이다. 특히 뒷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차창 밖을 내다보며 달리는 기분은 색다르다. 고속주행 안정성도 훌륭한 수준이다. 차 높이가 높지만 고속으로 달리면 1cm가 내려간다. 전자제어 서스펜션 덕이다. 8기통 5.0ℓ 엔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한 힘을 내서 차를 끌고 나간다. 언제든지 빠른 시간에 원하는 속도까지 올릴 수 있다. 힘 부족을 느낄 일은 없다. 엔진 소리와 바람소리는 실내로 파고든다. 아주 조용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이 정도 고급차라면 바깥 세상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한 실내를 원하는 고객들이 많을 것이다. 방음 대책에 대해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속도를 높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고속 주행안정성도 훌륭한 수준이다.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을 뒷좌석에 앉은 오너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포츠카 타듯 칼질하며 높은 rpm 써가며 요란법석을 떨며 달리다가는 뒷좌석에 앉은 오너에게 뒤통수 맞기 딱 좋다.

역시 이 차에는 이 차의 고객층이랄 수 있는 중장년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부부가 길을 건너다 한참동안 이 차를 바라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차를 사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이 보고 느끼는 체어맨 W는 어떤 차일지 궁금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 차의 잠재 고객층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입차를 타기가 부담스러운, 그러나 경제력은 충분한 이들에게 이 차는 좋은 대안이 된다. 수입차보다 더 비싼 국산차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벤츠 S 클래스나 BMW 7 아우디 A8등 쌍용이 경쟁차로 지목한 수입 최고급 럭셔리 세단과 쌍용 체어맨 W를 두고 선택을 고민하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파워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쌍용은 5년 10만 km 보증을 내세웠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꺼낼 수 없는 카드다. 길게 보면 품질관리가 이 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겠다.

판매가격 8770만원, 최고급 모델인 리무진은 1억 200만원이다. ‘의도적인 도발’을 하지 않았나하는 느낌을 주는 가격이다. 국산차도 잘 만들어 이 가격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자존심도 보인다. 가격에 대한 거부감의 있고 없고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 좋은 것은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는 품목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형에 다양한 옵션을 늘어놓고 게다가 패키지 옵션이라는 명목으로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원하는 것만을 고르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옵션 장난’을 하지 않아서 좋다. 단순함의 미덕은 디자인뿐 아니라 가격에도 스며있다.

오종훈의 單刀直入

7단 변속기는 가끔 변속 충격을 전한다. 주차 했다가 후진으로 기어를 넣을 때, 중립에서 D로 변속할 때 가끔 쿵 하고 작지 않은 쇼크가 전해온다. 변속레버 손잡이도 흔들거린다. DIS 죠그셔틀 버튼 중에 표면 처리가 매끄럽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긁혔거나 이물질로 인해 표면이 거친 것.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소비자들의 손에 전달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품질관리에 허점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사실은 큰 의미가 숨겨진 것이다.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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