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창세기라는 말이다. 현대자동차가 사운을 걸고 개발한 후륜구동 대형 세단의 이름을 제네시스로 지었다. 새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현대자동차의 새 역사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의미심장한 이름이지만, 조금 진부하다. 거리를 걷다보면 번화가에서 제네시스 라는 간판을 가끔은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흔한 이름이다.
시승차는 BH330. 스마트 쿠르즈컨트롤, DIS 등 세인의 관심을 끄는 옵션은 싹 뺀 차로 시승차가 배정됐다. 시승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정보와 기술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관심이 집중된 옵션들을 쏙 뺀 차를 시승하라고 준다. 신차 출시의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정면 모습에서 눈길을 끄는 건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스마트크루즈 컨트롤이 없는 차는 그릴에 곡선이 적용됐다. 의욕과잉이다. 그냥 놔둬도 좋은 선을 위로 아래로 구부려놔 부자연스럽다. 앰블렘은 윙타입이다. 좋은 모습이고 아니고를 떠나 날개를 형상화하는 식의 앰블렘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많이 적용하고 있다. 벤틀리, 크라이슬러, 미니 등이 좋은 예다. 좀 더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이었으면 좋았겠다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한 개성이 돋보인다기보다 무난하게 묻어가는 모양새다.
디자인은 안정된 모습이다. 대형세단이지만 상대적으로 젊고 밝은 컬러도 잘 받는 디자인이라 오너용차로도 어울리겠다. 무난하다는 평은 듣겠지만, 그러나 감동은 없다. 임팩트도 없다.
계기판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보여진다. 수험생 노트를 보는 것 같다. 대시보드의 부드러운 곡선은 운전자를 편안하게 만듭니다. 품 안에 안긴 듯 포근하고 편하다.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넓게 받쳐주는 시트는 다른 차보더 더 편안하다.
가죽과 나무로 꾸민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만들려는 의지가 곳곳에 배어 있다. 나무를 쓰기로 한 것 까지는 좋은데 나무의 질감은 영 아니다. 고급 차를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직감적으로 느낀다. 광택만 번쩍인다고 고급스러움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컬러, 손에 닿는 촉감, 눈이 느끼는 감각 등이 어우러져 미묘한 차이를 빚어낸다.
후륜구동차라서 뒷좌석이 정확하게 좌우로 나뉜다. 가운데는 센터터널이 높게 지나가 사람이 앉기에는 불편하다. 때문에 5인승이지만 많아도 4명만 타는 게 좋겠다. 후륜구동은 또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눈 쌓인 길에서는 잘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언덕길은 아예 엄두도 못낸다. 코너에서도 한계속도를 넘기면 급속하게 균형이 무너지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차라리 사륜구동을 장착하면 좋았겠다.
운전석에 앉으면 ‘넓다’는 생각이 든다. 좌우는 물론 머리 윗 공간이 넉넉해 한결 여유롭다.
시동을 거는 순간, 하이브리드 차인줄 알았다. 시동은 걸렸으나 엔진은 잠자고 있는 듯 조용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놀라움과 함께 머리 속에는 ‘렉서스’가 떠오른다. 제네시스의 소음 기준을 렉서스로 잡은 게 아닐까. 제대로 따라하는 것도 기술이다. 적어도 정숙성 만큼은 렉서스를 제대로 따라했다. 놀라운 정숙성이다. 하체에 언더커버를 씌우고, 차음재가 적용된 이중접합유리를 적용하는 등 소음 대책은 신경많이 썼다.
수동모드에서 가속페달을 밟아 차를 움직였다. 토크의 느낌은 굵지 않다. 현대가 후륜구동형으로 개발했다는 람다 엔진이다. 배기량 3.3리터 엔진은 262마력의 힘을 낸다. 강한 느낌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하다는 느낌을 주는 엔진이다. 소리는 확실히 덜 난다. rpm의 출렁임에 맞춰 나는 가늘고 낮은 엔진 배기음이 인상적이다. 고성능 엔진이라기보다는 편안함에 조금 더 무게중심이 가 있는 차다.
1단에서는 시속 60km에서 변속이 일어난다. 수동모드지만 rpm이 레드존에 이르면 자동변속이 일어난다. 변속되지 않고 끝까지 물고 있기를 기대하지만 번번이 자동변속되어 버린다. 수동 모드의 의미가 없다. 다만 엔진이 좀 더 고회전 영역까지 올라간다는 것 뿐이다. 2단에서는 시속 100km 까지 올라간다. 다른 변속기들보다 조금 더 높은 속도에서 변속이 일어나는 것이다. 엔진이 좀 더 다이내믹하게 반응한다는 것. 3단은 시속 140km까지 물고 올라간다.
킥다운이 아닌 보통 일상적인 주행상태에서는 변속이 조금 일찍 이뤄진다. 이렇게 부드럽고 가볍게 움직이다가 거칠게 다루면 변속 타이밍을 늦추며 강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브레이크는 부드럽고 정확했다. 다만 정지직전에 쇼크가 발생하는 일이 간혹 생긴다. 브레이크를 꾹 밟아 차가 속도를 줄이다 마지막 순간에 쿵하고 쇼크가 오는 것이다. 시승차에는 스마트 크루즈는 아니지만 크루즈컨트롤이 있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버튼을 만지작거리며 크루즈 컨트롤을 느껴봤다. 차 앞에 후크를 걸고 끌고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 차는 때로 헐크를 생각나게 한다. 조용하고 얌전하게 움직이지만 가속페달을 완전히 밟아 킥다운을 걸면 숨겨져 있던 야성이 살아난다. 거칠어지는 것이다. 야누스가 생각나는 두 얼굴의 자동차다. 시속 160km 전후의 고속에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면 차 뒤가 불안해질 때가 있다. 흔들리는 느낌, 불안한 느낌이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앞부분이 쿡 박히거나 뒤가 들리는 노즈다운은 느끼기 힘들다. 서스펜션이 차체를 잘 받쳐준다.
파킹 브레이크는 조그만 버튼으로 대체됐다. 시동을 끄면 자동으로 작동되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해제된다.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하니 매우 편하다. 브레이크 홀딩 기능도 있어 언덕길에서 밀림을 방지해준다.
롤스로이스에 공급된다는 렉시콘 오디오 시스템은 음악 마니아들이라면 매우 좋아할 품목이다. 자동차 오디오중 최고급 제품중 하나를 제네시스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 17개의 스피커, 7.1 채널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스템을 채택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공급이 제때 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사려고 주문했다가 제때 사지 못해 원성이 자자하다. 인기를 얻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대 이상의 인기 때문에 오히려 원망도 더 많이 듣게 생겼다. 갖고 싶은 것을 제때 갖지 못하는 불만이다. 제네시스를 살 정도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다고 봐야한다. 그런 사람들을 줄 세우고 기다리라고 하고 있으니 참 딱한 모습이다.
현대자동차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로 우뚝 서는 것일지 모른다. 제네시스는 현대가 벤츠나 BMW의 경지에 오르는 대장정의 첫발을 뗀 것 셈이다. 칭찬을 아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타깝게도 제네시스가 명차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벤츠를 살 사람이 제네시스를 보고 마음을 바꾼다거나, 적어도 고민을 하는 일은 없겠다. 브랜드 가치가 다르고, 가격도 차이가 나고, 고객층도 다르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글로벌 럭셔리 세단을 만들면서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었다. 닛산은 인피니티가 있고, 혼다는 어큐라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벤츠는 초소형차를 만들기 위해 시계회사 스와치와 함께 스마트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었다.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현대는 보다 효과적으로, 경제적으로 럭셔리 세단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1.5리터 소형차도, 3.8리터 최고급 럭셔리 대형세단도 모두 현대라는 이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중성 강한 고급차를 만드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이른바 명차의 반열에 오르려면 쉽지 않은 브랜드다.
오종훈의 單刀直入
새 세상을 열겠다는 창세기의 의미를 담은 거창한 이름 ‘제네시스’인데 창조의 고뇌를 찾기 어렵다. 고뇌가 없으니 감동도 없다. 잘나가는 다른 차들을 적당히 따라가려는 속 보이는 계산만 보일 뿐이다.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며, 사운을 걸었다는 차에 현대자동차만의, 혹은 제네시스만이 갖는 ‘이것’이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벤츠의 승차감, BMW의 단단함, 렉서스의 조용함, 인피니티의 강한 남성성, 롤스로이스의 럭셔리함, 하다못해 작은 차 미니의 깜찍한 디자인. 브랜드 마다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데 현대엔 그게 없다. ‘현대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는가. 바로 그 상징적인 이미지, 어쩌면 자동차 브랜드로는 생명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그게 없다. 다른 브랜드들의 핵심 특성을 두루두루 가져 오느라 가장 중요한 제 색깔은 갖지 못했다. 현대는 앞선 브랜드들을 추격하면서 이것 저것 배워올 게 많았지만, 현대의 뒤를 쫓아오는 추격자는 현대에서 배울 게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