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비를 읽다보면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리터당 15km를 달리는 차가 10km를 달리는 차보다 연비가 나쁜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리터당 15km를 달리는 차는 4등급, 10km를 달리는 차는 1등급이라면 어느게 좋은 것일까요. 분명 리터당 5km를 더 달리는 차가 연비가 좋지요. 하지만 4등급이 1등급보다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상식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연비 기준은 이처럼 정상적인 상식으로 보면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GM대우 마티즈 자동변속기 연비는 16.6km/ℓ입니다. 렉서스 GS 350의 연비는 10.3km/ℓ입니다. 당연히 마티즈가 GS 350보다 연비가 좋지요. 하지만 등급기준을 적용하면 마티즈는 4등급, GS350은 1등급입니다. 1등이 4등보다 좋은 거라면 당연히 GS350이 마티즈보다 연비가 우수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그룹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등급 구분을 하다보니 생기는 일입니다. 자동차 엔진 배기량을 800cc부터 3,000cc까지 7개로 나누고, 3,000cc 이상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각 묶음(군) 안에서 등급을 나누는 것입니다. 배기량이 낮은 순서로 1군, 2군…으로 분류돼고 8군이 3,000cc 이상입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엔진 배기량이 클수록 절대 연비는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은 엔진과 큰 엔진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이고 따라서 엔진 배기량별로 그룹을 나누고 그 안에서 효율을 비교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겠지요.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별로 복잡할 것도 없는 상황을 일부러 꼬아놓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지 않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연비 등급이 높은 차가 효율이 높고 따라서 에너지 절약에도 효과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체계 아래서는 연비 등급이 높은 차를 고르면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하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차에 붙어 있는 연비를 표시하는 스티커에는 “1등급에 가까운 제품일수록 에너지가 절약됩니다”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현행 방식대로라면 이 말은 엉터리입니다. 1등급에 가까운 제품이 오히려 기름을 더 먹는 경우가 얼마든지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등급, 1군에 가까운 제품일수록 에너지가 절약됩니다.”라고 표기하는 게 훨씬 정확합니다. 하지만 복잡합니다. 1등급이 뭐고 1군이 뭔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알 수가 없지요.
때문에 등급은 무시하고 실제 연비만을 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인식해야 선택도 제대로 할 수 있겠지요.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그래서 연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현재의 연비 표시 체계는 단순 명쾌하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연료 1리터로 몇 km를 달리느냐. 이것만 표기하면 되는 것을 굳이 등급을 구분해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