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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 9-3, 몰입하면 즐겁다

사브가 기지개를 켰다. 오랜 침묵을 깨고 소비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9-3를 새로 선보인 것이 계기다. 사실 그동안 사브와 GM는 판매실적이 저조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니, 정작 당사자들의 속앓이야 오죽했을까. 어쨌든 심기일전한 GM코리아가 올해는 제대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니 다행한 일이다. 터닝포인트의 전기가 된 사브 9-3를 탔다. 시승모델은 9-3 벡터로 210마력짜리 2.0 터보 엔진이 올라갔다.
사브는 원래 강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다. 여기에 북유럽, 스웨덴 등의 이미지가 겹치며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었다. 많이 팔리는 차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있는 색깔 분명한 차였다. 하지만 GM에 넘어가면서 사브의 강한 개성과 분명한 색깔이 조금씩 빛을 바랬다.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뭔가는 없었고, 사브 마니아들의 열기도 점차 식어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스웨덴 브랜드인 볼보 역시 비슷한 처지라는 것.

4635mm의 크기는 아반떼보다 조금 크고 쏘나타보다 작은 사이즈다. 사브가 경쟁모델로 지목하는 BMW 3시리즈, 아우디 A4, 벤츠 C 클래스보다 조금 크다. 단단해보이는 체구다. 정면에서 이 차를 보면 웃는 얼굴이다. 보닛 라인이 그리는 선이 마치 ‘스마일’하고 웃는 얼굴을 연상시킨다. 바로 그 선이 2세대 이전 사브 구형 모델의 라인을 연상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부드럽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3분할했고, 헤드램프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브레이크등을 투명하게 처리해 색다른 감각을 선보였다. 짧은 트렁크 라인이 옆에서 보기 좋다. 보디는 굴곡이 없다. 심플 그 자체다. 단순한 아름다움은 특히 자동차에선 큰 미덕이다. 다양한 기교를 뽐내며 화려하게 차를 만드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욕심을 채울 뿐이다. 이런 차는 정작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사람들이 차를 너무 몰라”라고 볼멘 소리를 해보지만 중요한 것은 차를 모르는 사람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욕심을 절제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차가 좋은 이유다. 적어도 디자인 만을 놓고 보면 사브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완성도가 높다.
운전석에 앉으면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사이드 브레이크 옆에 자리한 이그니션 키 박스, 벌집 모양의 환풍구.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여전한 모습임을 확인하고 나오는 포근한 미소다. 여전하군, 오랜만이네. 친구!

운전석에 앉으면 바깥 세상이 넓게 펼쳐진다. 스티어링휠은 낮고 창은 넓다. 시원하다. 벙커 안에 들어앉은 기분이 드는 차가 있는가하면,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에 올라선 느낌을 주는 차가 있다. 사브 9-3는 후자에 가깝다.
엔진을 흔들어 깨우고, 도로 위로 올랐다. 시프트레버가 손에 딱 들어온다. 시트는 몸을 받쳐준다.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사브 아닌가. 달리는 맛을 제대로 느껴봐야 한다.

2단에서 시속 100km까지 뽑았다. 수동모드로 운전하면 자동변속은 안일어난다. 운전자가 변속해야 시프트 업, 다운이 된다. 주인님 뜻대로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운전하는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대신 주인이 운전을 잘해야 한다.
3단에서 140km가 한계다. 4단에서 한계속도까지 오르기엔 도로 상태가 너무 안좋았다. 계기판의 터보게이지가 바쁘다. 나이트 패널이 있어 계기판을 단순화 시킬 수 있어 좋다.
저속에서 속도감이 좋다. 실제 속도 이상의 속도감이 난다. 달리는 맛을 즐기는 이에겐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초기 가속감은 더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속도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터보가 장착된 엔진은 여유있게 차의 속도를 끌어올린다. 도로에 달라 붙은 느낌이다. 뭐랄까. 몰입해서 차를 다루다보면 차가 몸에 착 감겨서 하나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9-3 터보는 스퀘어 엔진이다. 보어와 스트로크가 같은 정방형 엔진. 210마력에 제로백이 8.8초다. 제법 빠른 편으로 스포츠세단에 어울리는 성능이다.
판매가격이 3,690만원이다. 수입차 가격들이 점차 내려가고 반면에 국산차들이 치고 올라오니 이젠 3,000만원대 수입차가 훨씬 매력이 커졌다. 쏘나타를 사려는 사람이라도 3,000만원대에 고를 수 있는 수입차들이 이런 이런 차들이 있다고하면 ‘정말?’하고 눈이 커진다. 조금 무리해서 살 수 있다면 사겠다는 사람들이다. 국산 대형세단을 타는 이들에겐 무리할 것도 없다. 사브 9-3 역시 뭔가 수입차를 타려는 이들에게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오종훈의單刀直入
지붕 끝선의 마무리가 아쉽다. 지붕과 윈드실드가 접하는 지붕 끝선이 깔끔하지 않다. 트렁크 안쪽 위를 보면 맨 철판이 드러나 있다. 다른 차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으니 굳이 이차만을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스피커를 고정하는 나사. 뾰족한 나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위험하다. 물건을 넣거나 빼다가 다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모두 마무리의 문제다. 기술이라기 보다 성의, 혹은 기본의 문제다. 좀 더 세심한 마무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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