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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모든 게 차 안에 있다”

아마 2003년 어느 날이었을 게다. 일면식도 없는 한 사내에게서 불쑥 전화가 걸려왔다. “자동차 칼럼니스트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만나서 조언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그는 당시 기자 생활 10여년에 접어든 기자와 비슷한 연배였다.그의 자세는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했다. 대학생의 진로 상담도 아니고, 산전수전 겪을 만큼 겪었을 그에게 기자가 해준 말이라곤 “열심히 해라.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공자 말씀이었다. 진지한 질문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답이었다. 솔직히 이렇다고 딱 집어서 해줄 말이 없었다.

30대 후반, 처와 두 아이를 거느린 가장. 그런 그가 자동차 칼럼니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기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면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쉽지 않은 길인데다 큰 돈 벌 수 있는 길도 아니어서다. 솔직한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기도 했고, 그가 미련없이 버리고 나왔다는 그의 직장이 아깝기도 했다.


모토딕 박태수 사장과의 첫 대면이었다. 안정된 꿈의 직장을 접고, 온 가족을 끌고 유학길을 떠났다가 막 돌아온 길에 기자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와의 남다른 첫 대면은 이렇게 기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예사 스럽지 않은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박태수. “내 인생을 전환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좋아하는 자동차 공부를 하러 바다 건너 캐나다로 향한 사내다. 이년동안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 40대에 ‘자동차로의 인생전환’을 단행한 주인공이다. 오토다이어리 게시판에 ‘현준하연 아빠’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올리는 이가 바로 그다.


그는 경기도 파주에 산다. 자유로의 끝자락, 통일전망대가 있는 햇볕 좋은 마을에 그의 아지트가 있다. 모토딕(www.motordic.com). 자동차 지식사전을 모토로 내건 인터넷 사이트다.



머리는 온통 하얗게 샜고, 관리하지 않아 자라는대로 내버려둔 턱수염도 하얗다. 백발이 성성한 그의 나이는 마흔다섯. 자유분방함이 물씬 풍기는 그의 외모는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자동차 인생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잘나가던 직장인이었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고, KAIST에서 SE 프로그래밍 과정을 마쳤다. 공부를 마치는 그는 한국전력공사를 거쳐 파워콤에서 예산과 재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자동차와는 상관없는,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인생이었다.


2000년을 앞두고 그는 이대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동차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캐나다행을 단행한다. 석박사 코스도 생각했지만 “비용대비 효과가 크지 않겠다”는 생각에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알곤퀸 컬리지 자동차학과를 택했다. 2년제 대학이었다. 그곳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자동차 공부를 진하게 하고 2년만에 서울로 돌아온다. 2003년이었다.


왜 자동차였을까.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있었기 때문이지요.” 중학교때부터 이미 전자 공작 수준의 만들기에 심취했던 그에게 자동차는 꿈이었다. “전기, 전자, 프로그래밍, 글과 사진, 디자인 등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의 종합판이 바로 자동차였다” 는 것이다.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생활을 생업으로 꾸리고 자동차는 적당한 수준에서 취미로 즐겨도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무리하게 먼길을 떠났을까. 아마도 그는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을 가졌을지 모른다. 해야 할 일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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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자동차 생산대국이기는 하지만 자동차 문화가 없어요. 자동차 메이커가 운영하는 제대로 된 자동차 박물관 하나 없는 게 이를 말해 줍니다. 적어도 자동차 분야에서만큼은 문화결핍의 시대죠. 모토딕을 통해 자동차 문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고 박태수는 말한다.
그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10년 후에는 모토딕을 중심으로 여러 전문가, 혹은 집단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는 시스템이 정착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재무 분야의 전문가이자, 모토딕의 개발자이자 운영자이면서 기계장치를 만드는 엔지니어이기도 하고, 제품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연구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자동차의 구석구석을 찍는가 하면 동영상 제작용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만능이다.


그가 자동차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전자제품 개발 제작,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실적을 쌓고 있다. 한국산업인력연구공단의 휴대용 실물화상기를 설계 제작했고,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라디에이션 모니터링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삼성병원의 전자동 방사면역 진단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산업인력공단 엔진 제어 모의실험장치를 설계 제작했다. 더 많은 실적들이 그의 이력서에는 빼곡이 적혀있다.


하지만 그를 더 빛나게 하는 건 만능인 재능이나 이력서를 가득 채우는 실적이 아니다. 자동차 문화의 깃발을 세우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리는 열정이다. 그 열정이 그를 태평양을 건너게 했고, 모토딕을 세우고, 여기까지 오게 했다. 열정이 있어 밝은 미래도 있다.


박태수는 멀리만 보고 달리지 않는다. 그는 올해 ‘자동차 문화센터’를 지을 생각이다. 그의 머리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주 큰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문화센터의 지붕은 빨간색으로 정했어요. 넓은 잔디밭을 꾸밀 생각입니다. 가족이 함께 와서 아빠는 차를 직접 고치거나, 뜯어보고, 혹은 자동차 관련 모임, 강좌 등을 즐기고, 엄마와 아이는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거나 잔디밭에서 노는 곳을 만들겁니다.”


기자가 그의 말을 신뢰하는 건, 2003년 그가 자동차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부터 쭉 그를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때로 황당하기조차 한 그의 말은 차근차근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분야에서 사십대에 새출발을 하면서 모토딕을 탄탄하게 일궈냈고, ‘내 차, 요조조모 돌보기’라는 책도 펴냈다. 자동차 관련 서적중에서는 가장 알찬 책중 하나로 평가받는 책이다. 남의 집 귀퉁이를 전전하며 코딱지 만했던 모토딕의 사무실은 지난해 말 번듯한 자체 건물을 지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차근차근 계획을 이뤄가고 있고, 결국 그의 생각을 펼쳐낼 것이라는 게 짧지 않은 시간 그를 지켜 본 기자의 결론이다.


그는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 특히 국내 시장에서 강한 지배력을 갖는 현대기아차 그룹에 강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내가 하면 엄청난 노력과 큰돈이 들겠지만 현대가 하면 약간의 관심과 비용이면 훨씬 더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면서 “자동차 문화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이들에게 주문했다. 문화적 토양 없이 자동차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가 만든 자동차 문화센터가 오픈하는 날,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를 약속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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