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뉴 7 시리즈를 발표하는 자리. 무대 위에 오른 남성 모델은 BMW코리아의 김효준 사장이었다. 강한 존재감, 성공한 남성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게 BMW 주양예 홍보팀장의 말이었다. 전문 모델 뺨치는 포즈, 시선 처리, 표정. 중후함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무대를 압도했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런 모습에 힘입어서였을까. 회사 관계자는 사진 기자들에게 연신 “원하시는 포즈 있으시면 말하라”고 얘기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온화한 미소, 그러나 분명한 메시지, 편한 웃음을 끌어내는유머로 자리를 이끌었다.
“희망은 있는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고난에 처한 자동차 산업의 우울한 얘기 대신, 이를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얘기를 그에게서 듣고 싶었다. 그래서 던진 질문이었다.
“브랜드 파워가 필요한 시점이다. 브랜드 파워를 갖추지 못한 업체들은 많이 힘들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한 업체들은 고전할 것이란 설명이다. 브랜드 파워를 갖춘 BMW는 어려움이 크지 않을 것이란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BMW의 울타리에만 갖혀 있지는 않았다. 시대와 분야에 구애받지도 않았다.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경기는 30년 주기로 반복한다. 경기가 바닥일 때 힘들게 허리띠 졸라매고 고난을 거치며 난관을 이겨내면서 30년쯤 지나면 훨씬 더 튼튼해진다. 경기가 좋아져서 조금 느슨해지면 여지없이 경기는 곤두박질 친다. 과거 네덜란드 튜울립 가격이 집 한 채에 이를만큼 폭등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거품이 걷히고 난 뒤 튜울립은 네덜란드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았다. 꾸준히 경쟁력을 개선한 결과다. 미국에서도 철도 거품이 걷히고 난뒤 철도 경쟁력이 커졌다. 거품이 걷히면 더 튼튼해지게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그의 말 끝에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이 이어진다. “인재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인재를 키워야 한다. 20년 전 수입차 초기 시절부터 나의 소신이었다. BMW코리아 출신 중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독일 본사에 4-5명이 나가 있고, 미국 BMW의 재무책임자도 BMW코리아출신이다. 하나같이 일 잘 한다는 평을 받는다. 탁월한 후배를 키워 내 자리에 앉힌 뒤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은 선배다. 인재, 즉 직원들이 소중한 이유는 또 있다. 고객을 만족시킬 사람들이 바로 직원들이어서다.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직원들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사장이 된 후 부장들에게 BMW 차를 지급했고 이후 차장들에게 이를 확대했다. 직원들이 제품을 제대로 알고 자부심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 본사에서도 임원들이나 BMW를 제공받는데 한국에서 차장들에게까지 차를 지급한다고 하니 그들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좋은 결과로 그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중 하나로 BMW 코리아가 꼽혔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질문은 두서 없이 이어졌다. 이날 론칭한 뉴7시리즈의 경쟁모델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했다. “비교를 거부한다.”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나왔다. “그만큼 자부심이 큰 차다. 경쟁자를 굳이 꼽으라면 고객이다. 고객의 니즈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가.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7시리즈에 대한 자랑은 조금 더 이어졌다.
“전세계 딜러들이 7시리즈 론칭 전에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딜러들의 만족도가 대단했다. 모두들 얼굴이 환했다. 부정적인 코멘트를 듣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향후 2-3년 안에 출시 예정인 5-6대의 차들을 모두 실차로 볼 기회가 있었다. 일부 국가의 딜러들은 투자를 해서 전시장을 넓혀야 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


7시리즈를 론칭한 7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김 사장처럼 바쁘게 활동하는 CEO는 휴일을 어떻게 지낼까. “휴일에도 일이 많다. 쉬는 날이어도 밀린 원고를 쓰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나면 아내와 장보러 가서 짐꾼 노릇을 한다.”


자리가 파할 때 쯤 그가 던진 말 한 마디는 새겨들을만 했다. “기도는 과학이다. 지극히 원하면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이 온통 잿빛으로 우울한 시기에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오종훈 yes@autodiary.kr